피카소와 그의 유파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간단한 예비지식으로서, 직관적인 이해방식과 합리적인 이해방식 사이의 구별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M.제르보스(Zervos)는 여러권의 책 속에서 피카소의 작품에 대한 포괄적인 논평을 한 사람인데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피카소는 결코 자기의
작품을 발표한다. 이때까지 우연성에 입각하여 놀라운 효과를 창출해내는 창작에 주력하며 모든 반예술적인 것에 관심을 보이던 그는 1930년부터는 "세르클 에 카레(원과 사각형)"그룹에 합류하여 구성주의적 기하미학에 심취하며,점차 입체 조각에도 손을 댄다. 이 시기의 작품에서 아르프는 직선 사용
예술가와 작가들이 하나의 모임을 결성 하였다.
이 캬바레는 관객들 사이 사이에 입회한 예술가들이 매일 시나 음악 프로그램을 공연하기 위해 모임을 원칙으로 운영 되었다.
2. 다다의 정신
1914년 - 1918년 까지의 계속된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그때까지의 합리주의적이고 평화로운 유럽의 전
파블로피카소(Pablo Ruiz y Picasso 1881-1973년)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나 교육받고 파리에서 죽었지만, 세계적인 큐비즘(Cubism)의 화가가 되었다. 그는 데생 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바르셀로나 미술 학교에서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다. 열아홉 살 되던 해에 파리로 갔는데 그곳에서 그는 표현주의자들
찍은 장본인이었다. 그의 예술은 난센스 즉 기존의 모든 고정 관념을 깨는 예술이었다. 그로 하여 그는 진정한 모더니티를 획득했고 그런 정신을 다각적으로 시도하며 평생을 살았다. 예술가가 꿈꿀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도전하는 그의 예술 세계는 별난 해프닝과 예술적 실험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