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사지의 소조 불좌상과 옛 백제의 도읍인 부여의 규암면 신리에서 출토된 금동불좌상 등이 있다. 신라에서도 불교가 공인된 이후 6세기 후반에는 대규모의 불상조성이 이루어진 것으로 짐작되는데, 566년(진흥왕 5) 완성된 거대한 절 황룡사의 절터에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장륙의 금동삼존불상의
폐사지로 알려졌지만 석불입상, 오층석탑, 삼층석탑, 석등 등 옛 석굴사원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덕주골에 있는 마애불상을 마주보기라도 하듯 북쪽으로 향해 있는 석불입상 앞에는 예불을 드리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미륵리사지를 지나 산길로 들어서면 전나무와굴참나무로 우거진 숲길
1982년 11월 3일 강원도기념물 제53호로 지정되었다. 양양 진전사지와 더불어 한국 선종(禪宗)의 개화를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폐사지로 꼽힌다. 선림원은 804년(애장왕 5) 무렵 순응(順應)이 세운 절로 알려져 있다. 순응은 802년 해인사를 세운 승려로, 이로써 선림원이 신라 불교 최대 종파였던 화엄종에
폐사지(廢寺址). 지금은 더 이상 절로서의 기능을 다 하지 못하는, 그러나 그저 그 곳이 우리가 막연히 짐작만 하던 어느 시대에는 대웅(大雄)의 자비를 찬미하는 곳이었음이 분명한 곳을 일컫는다. 거기에 가면 우리는 한 시대를 풍미했으나 속절없이 스러져 간 수많은 영혼들의 울림을 듣는다. 절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