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납토성, 그리고 춘궁리 일대를 포함한 이성산성, 이렇게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각각의 추정 도읍지에 대한 설명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선은 위례성이라고 하는 그 어원에 대해서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2. 위례성의 어원
백제의 왕성 이름인 ‘위례(慰禮)’의 원의는 ‘우리’, 즉 담장
백제건국은 이보다 한참 전이며, 최근 발굴 성과에 의하면 풍납토성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몽촌토성 것보다 앞서는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몽촌토성보다는 풍납토성이 초기 왕성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Ⅴ. 미궁에 빠진 왕성의 위치와 떠오르는 풍납토성백제는 고구려에서 내려온 유이민들이 세
인간사회가 인구의 증가와 동시에 사회의 질서를 확립하고 생산이 증가하면서 국력이 팽창한다는 것은 자연의 추세일 것이다. 한 나라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데는 국민의 경제가 부강해야 하고 거기에 따라서 이웃나라의 침략을 방어할 수 있는 군사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일 것이다.
사가에 있
백제(百濟)가 한강(漢江)유역에서 건국(建國)․발전(發展)했던 때의 대표적(代表的)인 토성(土城)이다. 몽촌토성은 한강지류에 해당하는 이곳의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진흙을 쌓아 성벽을 만들었고, 특히 북벽의 단을 이룬 곳에서는 나무울타리를 세웠으며, 그 외곽에는 해자가 둘러져 있었음이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