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납토성, 그리고 춘궁리 일대를 포함한 이성산성, 이렇게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각각의 추정 도읍지에 대한 설명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선은 위례성이라고 하는 그 어원에 대해서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2. 위례성의 어원
백제의 왕성 이름인 ‘위례(慰禮)’의 원의는 ‘우리’, 즉 담장
1. 삼국 시대의 궁궐건축
(1) 고구려시대의 궁궐 건축
고구려시대의 도성계획을 살펴보면 먼저 도읍을 졸본성, 국내성, 환도성, 평양성, 장안성 등으로 천도하였다. 그리고 국내성, 만주 통구 지방에 방형성으로 사방에 성문을 설치하였고, 586년(평원왕 2년)에는 장안성을 건설하였다. 이 성은 중국 수
백제 건국은 이보다 한참 전이며, 최근 발굴 성과에 의하면 풍납토성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몽촌토성 것보다 앞서는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몽촌토성보다는 풍납토성이 초기 왕성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Ⅴ. 미궁에 빠진 왕성의 위치와 떠오르는 풍납토성백제는 고구려에서 내려온 유이민들이 세
몽촌토성 발굴 『몽촌토성』, 서울대학교 박물관, 1988, 1989.
, 1986년부터 6차에 걸쳐 이뤄진 이성산성발굴 『이성산성』, 한양대학교 박물관
, 1996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풍납토성발굴 『서울 풍납토성(백제왕성) 실츨조사연구』, 백제문화개발연구원, 1997.
등이 이뤄지면서 백제초기역사 복원을
몽촌토성의 88-1호주거지는 민가로 추정되고 있고, 88-2호주거지는 동문터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성벽 정상부분에 있고 출토된 유물에 무기류가 있는 점으로 보아 군사적인 용도와 관련된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주거 내부 공간의 분할은 진안 와정 4호주거지의 경우, 내부 시설은 부엌과 주거공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