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기 어려웠을 터이고, 따라서 많은 문맹자까지 널리 이야기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장경의 저자 곽박이 장법의 원칙으로서 제창한 <장풍득수>도 실은, 예로부터 중국 민간에서 바람과 물을 관찰하여 땅을 고르던 습관을 차용하여 상지법의 원칙을 삼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풍수를 개방적으로, 혹은 객관적으로 보기를 주저하는 것 같다"면서, 그 이유는 "풍수의 전통이 제대로 계승되지 못했고,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지 못했기 때문"이라 풀이했다. "풍수지리는 관련되는 연구 분야가 워낙 다양하여, 학제적인 협동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또 "풍수지리사상이
생활사를 눈으로 직접확인 해 보기 위해서였다. 생활도구를 통해서 당시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상상해보고자 했는데 수업시간에 배웠던 혼례를 주제로 구체적인 절차와 사용되는 물품들 그리고 여기에 숨겨져 있는 정신세계를 조사하고 관찰하며 당시의 혼례모습을 차례대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와는 다른 것을 느낀다. 그래서 육체와 유리되어 활동하는 원리, 즉 영혼을 상정(想定)하게 되었다. 수면과 가사(假死)는 영혼의 일시적 부재(不在)상 태이며, 죽음은 그 영원한 부재상태이다. 그러나 사람이 죽고 난 뒤에도 영혼은 독립하여 활동하기 때문에 그것을 숭배하는 데서 종교가 비롯되었으며,
도선의 저서
《도선비기(道詵秘記)》
한국의 풍수 창시자인 도선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풍수서로 한국에 중국의 체계화된 풍수사상을 최초로 전한 책으로 의의를 갖는다. 지리쇠왕설(地理衰旺說)·산천순역설(山川順逆說) 및 비보설(裨補說) 등을 주장하였다.
고려 태조 왕건은 《훈요십조(訓要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