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정으로 오히려 국민들의 불만을 부채질 할 따름이었다. 7년 전쟁의 패배로 인도와 캐나다를 영국에 양도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재정 상태는 극도로 악화되어 갔다. 루이 16세에 이르러서 왕정은 구제불능의 상태에 빠져 들어갔으며, 심각한 경제적 파탄은 마침내 프랑스대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심리와, 인간의 삶에 있어 그 쾌락과 고통의 절정을 의미하기도 하는 이 소설은 인간의 성과 사랑에 대한 자유주의 사상을 담고 있는 것이다. 당시 귀족 상류사회에서 죄악에 가득 차고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손가락질과 배척을 당했던 이 작품을 통해 18세기프랑스 사회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프랑스문학은 자치권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이후 1695년 67세 때에 발표한 <어미 거위의 이야기>는 커다란 대중적 성공을 거두며 2년 후 <교훈을 곁들인 옛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바꾸어 출판되었지만 18세기 내내 페로의 동화는 문인으로부터 대접을 받지 못했고 페로는 1703년 75세의 일기를 마감합니다.
교육의 근본이념이 아주 극단적 종교적 색채를 띠게 되었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서나 마찬가지로 어린이들이 이런 종교 냄새가 짙은 이야기에만 만족할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걸리버 여행기>, <로빈슨 크루소> 같은 모험, 풍자 소설이 등장하였다. 샤를르 페로는 프랑스의 여덟 가지 예 이야기를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