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C 국제정세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
국제관계사에서 19세기의 세계는 흔히 영국과 러시아의 대결시대(英露對決時代)라고 일컬어진다. 나폴레옹 타도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영국과 러시아가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그 뒤로 양국의 패권을 다툰 데서 비롯된 말이다. 러시아가 발칸과 중앙아시아, 동아
하나부사 요시모토 공사의 보고를 통해 군란 소식을 알게 된 일본정부는 조선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며 하나부사를 전권위원으로 하여 군함과 병력을 조선에 파견했다. 6월 29일 제물포에 도착한 하나부사는 7월 7일 고종을 알현한 자리에서 7개항의 요구사항을 제출하고 3일 내로 회답할 것을 통고했
하나부사공사가 군변의 사실을 일본정부에 보고하자 일본은 곧 군함 4척과 보병 1개 대대를 조선에 파견하였으나 청의 신속한 군사행동과 병력 차이로 인해 대항하지는 못했다. 이때 하나부사 일본 공사가 이끄는 일본군 대대 병력이 서울로 진주한 것은 음력 6월 29일이었다. 대원군이 청나라에 의해
정권 장악. 청은 내정간섭. 군란당시 도주했던 일본공사 하나부사는 서울로 돌아와 주둔하며 보상을 요구.
3 8월30일 제물포조약 체결
4 임오군란은 조선에서의 일본세력을 약화시키고 청의 지위를 상대적으로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지만 그와 동시에 개화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계기
하나부사 공사와 함께 도쿄에 도착한 한 조선인의 이야기에 의하면"으로 시작하는 이기사는 "지금까지 조선에는 국기가 없었는데 이번에 청국에서 온 馬建忠(마건충)이 조선의 국기는 청국을 모방해 삼각형 청색 바탕에 용을 그려 쓰도록 했다. 본국은 황색을 사용하지만 조선은 동방에 해당하는 속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