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미술의 기점을 설정하는데 있어 그 근거는 다르나 대체로 일치를 보이는 시점은 많은 미술단체들이 등장하는 1957년으로 볼 수 있다. 이때 등장한 단체들은 공통적으로 반국전을 기치로 기성화단에 대해 도전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이 새로운 미술창조를 위해 결별을 마지않았던 국전은 어
평가해야할까? 미술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순수추상’의 화가들이 자신의 조형양식을 바꿔가며 민족기록화 사업에 참여한 당위성은 무엇인가?
이런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결국 문제는 역사를 해석하는 주체로서 작가가 역사적인 주제에 얼마나 또는 어떠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지 이며 그것을 어
영향,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계속하여 18세인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서 수채화 <봄이 오다>로 입선.
가난한 환경 속에서 가난한 이웃들을 소재로 작품활동. 독특한 작품세계 확립.
1957년 심혈을 기울여 그린 대작 <세 여인>이 국전에서 낙선
=> 이 때문에 과음, 백내장, 간경화 등 건강 악화
한국 미술의 국제적인 진출에 노력하였다. 그러나 전통적인 것과 근대화의 각성, 그리고 전위미술 등이 뒤섞여 착잡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회화는 조선 후기의 남화풍을 계승한 한국화로서 주로 선전과 서화협회, 광복 후에는 국전 등을 무대로 하여 발표되었다. 광복전에는 조석진, 안중식, 김규진,
한국현대미술사가 남성작가 위주로 정리되었던 것에 문제 제기를 하면서 한국 내에서의 페미니즘의 역사를 살피며 한국의 현대미술 안에서의 페미니즘인 ‘여성주의 미술’의 태동과 전개과정에 관해 알아보고자 한다.
Ⅱ. 한국 페미니즘의 소사
1970년대 이후 산업화로 도시와 농촌에서는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