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지역도 평정하여 경영하였으나, 7세기 백촌강전투 7세기 중엽 백제부흥군을 지원한 왜 군단과 나당연합군과 싸운 전투
에서 패배한 후 한반도 남부의 경영을 포기했다고 주장하였다.
이 설은 일본고대사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보는 계기를 만들었으나, 고대에 임나지방을 지배했음에 변화가 없다
임나(任那)란 대체로 낙동강 서쪽의 가야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 기록에는 매우 드물게 나오는데, 삼국사기에는 신라 문무왕 때 문장으로 이름을 떨친 강수가 원래 임나가라 출신이었다는 언급이 있다. 이렇게 임나가 지역명칭이라면,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란 그곳에 설치된 일본의 관부(官府)
Ⅰ.임나일본부에 대하여
1. 임나일본부 어의(語義)
"임나일본부"란 임나(任那) + 일본(日本) + 부(府)의 합성어.
임나(任那) : "일본서기" 이외에도 "광개토왕릉비"삼국사기 강수전, 진경대사탑비, 한원, 통전(通典) 등 한국과 중국의 문헌에서도 확인되며, 가야의 이칭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즉, ‘임
Ⅲ. 결론
이제껏 나는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의 논리적 허구성을 짚어 왔다. 그들이 임나일본부설에 사료적 근거로 삼았던 광개토태왕비의 신묘년 기사의 내용의 허구성과 그들이 말하는 침략의 전초기지로 서의 가야가 당시 그들의 야마토 정권과 비교 했을 때 터무니없이 강했다는 점을
임나일본부설’은 역사적 사실에 어긋남이 한일 역사학계에서 공통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과서에서는 이 설이 한일관계사 서술에서 침략을 합리화하는 잘못된 인식의 틀로 작용되고 있다.
2. 일본의 역사를 미화시키기 위해 한국사를 폄하하고 있다
철저하게 일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