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강목』이 편찬되던 시대적 분위기를 이해해본다면『동사강목』의 성리학적 성격을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명종 이후 퇴계 이황에 이르러 성리학의 철학체계에 대한 인식이 확립되고 율곡 이이가 나오면서 성리학적 입장에서의 정치철학의 체계를 내세워, 한국의 성리학이 토착화한 수준에 이르렀다
성리학은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조선조 후기의 여러 방면의 침체를 벗어날 역량에 부족함을 보였던 것이 또한 사실이다. 이에 대하여 실학이 일어났고 이것은 성리학의 형식적 명분론과 같은 것보다는 알찬 내실의 학을 추구했던 것이다.
그래서 본 小論은 유학, 특히 한국유학의 몇 가
1. 한국 천주교의 시작
조선의 학자들은 이미 17세기 초부터 천주교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며 서양에서 들여온 서학서적들을 통해 서구 과학기술과 함께 천주교 신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천주교 사상과 우리 나라 전통 사상은 그 후 2세기 정도 탐색기를 거쳤고 1784년 조선 천주교회의
‘한국’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학문이나 사상을 꼽으라면, 우리는 힘들지 않게 ‘유학’을 떠올릴 수 있다. 근대 이후 서양의 많은 가치들이 한국사회에 들어와 정착하였지만, 우리는 유독 ‘한국적’인 것을 생각할 때면, 자연스럽게 유학을 연상 하게 된다. 이는 실제로 현재의 유학이 우리에게
Ⅰ. 민족문학론의 사적 전개
*조선문학건설본부의 인민문학론
해방직후, 문학권 내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이른바 광범위한 진보적 문학가들의 결집체인 조선문학건설본부의 결성과 그 내부에서의 카프 맹원들이 이데올로기의 비타협성을 내걸면서 결성한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의 결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