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직전의 전체적 상황이었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모두 상대가 먼저 전쟁을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에 있어 한국 전쟁은 적화 통일의 야욕을 가진 북조선 공산군의 침략을 저지한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방어전이며, 대한민국국군의 주적은 어디까지나 북조선의 인민
정치지형은 다양한 정파들이 각축하는 구도로 형성되었다. 국내파로는 조만식을 중심으로 한 우익 민족진영과 박헌영을 중심으로 한 좌익 공산주의 진영이 세력을 확대하는 가운데, 해외파로는 허가이 등의 소련파와 김두봉, 무정 등의 친 중국 연안파 등이 정치의 중심 파벌들을 구성하였다.
한국문제 전담기관인 ‘꼬르뷰로’를 해체 코민테른은 상하이, 이르쿠츠크 고려공산당 양파의 해체를 선언하고 1922년 꼬르뷰로를 설치했다. 꼬르뷰로의 임무는 그간의 파쟁을 극복하고 조선내 통일된 공산당을 조직하는 것이었다. 꼬르뷰로는 우선 시베리아 한인 공산주의조직을 재정비, 정리했으며
인민 민주주의 국가로 규정했었다. 그러다가 북한은 토지소유의 집단화가 완성되면서 스스로 사회주의 국가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명칭이야 어쨌든 북한은 조선노동당의 일당독재, 소유의 집단화, 김일성의 절대권력을 통해 서서히 전체주의적 공산주의 체재로 변해 가기 시작했다 이후 북한은 1930년
못하고 있는 것같다. 워싱턴은 무엇보다도 소련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던 바 역시 소련이 아직 전쟁을 벌일 시기는 아니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워싱턴이 사태의 전개를 실제로 긴박하게 보지 않았는 지, 아니면 정치경제적 의도에 의해서 고의로 무시했는 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