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술한 유형원(柳馨遠), 탈주자학적 경학해석에 물꼬를 텄던 서계 박세당(朴世堂) 등이 활약했던 17세기는 서로 다른 학문적 관심과 배경에서 개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학파의 맹아기라 할 수 있다.
18세기에는 17세기에 싹텄던 실학적 문제의식과 사상적 요소들이 정리되어 실학파의 학
학문은 이 4명을 중심으로 북송의 신학풍을 받아 집대성한 것인데, 정주학이라는 명칭이 말하듯이 이정, 특히 정이의 학설을 계승, 전개하고 있으며, 그런 뜻에서 이 책은 주자학의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또 그해 여조겸의 제창으로 당시 사상계 한편의 우두머리였던 육구연 형제와 <아호의 회>라
주자학 때문이라고 하지 연암은 주자는 천고의 의리주인이다. 의리가 이기는 곳에는 천하막강이니 어찌 문약을 염려하겠는가 하였다. 또한 한문제, 당태종 같은 영특한 자품에 정주의 학문을 겸한다면 진짜 요순도 굳이 사양할 것이 없다. 하였다. 이는 연암의 진심이었던 것으로 보아진다. 연암은 한
저술했다. 이 작품은 랴오둥[遼東]·러허[熱河]·베이징[北京] 등지를 지나는 동안 특히 이용후생(利用厚生)에 도움이 되는 청나라의 실제적인 생활과 기술을 눈여겨 본 것의 내용을 담았고, 청나라의 문화를 소개하고 당시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방면에 걸쳐 비판과 개혁을 논하였다.
생애를 다룬 연구도 굉장히 많이 이루어졌다. 허균은 조선시대 이단으로 일컬어질 만한 새로운 사상과 개혁의 이론을 내놓았다. 그의 그런 태도가 그때의 사회에서는 경망스럽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오늘날에는 오히려 끊임없는 학문의 욕구를 지닌 정직하고 자유분방한 지성인의 모습으로 보일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