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황과 홀로서기
율곡은 나이 열 셋에 진사 초시에 합격하였고, 이때부터 문장이 날로 성취되어 소문이 자자하였다. 그러나 그런 명성과 기대 못지않게 그의 학문과 현실 사이에서의 고민과 갈등은 더욱 커져갔다. 자신을 알아준 문장가 송인(宋寅)에게 보낸 다음 글은 그의 이러한 갈등을 단적으
퇴계 선생도 회재의 생존 시에는 그를 우러러 보지 않았으나, 회재의 卒後에 아들이 행장의 제작을 부탁하면서 遺著와 事蹟을 보내오자 비로소 그의 학문을 알았고, 무극태극 논변을 보고서는 찬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退溪集』,「晦齋李先生行狀」에서 보이듯이 퇴계 선생은 회재의 논변의 공로
유(儒)의 참뜻
유학(儒學)·유교(儒敎)라고 말할 때의 '유(儒)'란 유(柔)·유(濡)·윤(潤)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유(柔)는 부드럽다는 뜻이고, 유(濡)는 스며들다·젖다의 뜻이며, 윤(潤)은 (물에 젖어) 붇다·윤택하다는 뜻이다. 세 글자 모두 '젖다'와 관련이 있는데 이것은 곧 옛 어진 이가 가르친 도(道)를
Ⅱ. 본론
1. 퇴계이황의 생애와 사상적 배경
1) 퇴계이황의 생애
(1) 출생
퇴계의 성은 이, 이름은 황(李滉 : 1501~1570),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 도옹(陶翁), 퇴도(退陶), 청량산인(淸凉山人) 등이며, 관향은 진보(眞寶)이다. 퇴계는 1501년(연산군 7년) 11월 25일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퇴계는 ‘태평한 세상을 걱정하고 밝은 임금을 위태로이 여긴다.’는 옛말을 인용하며 ‘나라는 항상 위난에 방비함이 있어야 하고, 임금은 겸허해야 할 것’을 역설했다. 유비무환의 경영철학을 제시한 것이다. 그는 관직에 있으면서 문무를 겸비한 국방책을 제시했으며, 일찍이 준비하는 태도의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