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부 인구는 약 10만 명 선이었으며, 대부분 귀족관료와 그 가족들, 군역에 종사하는 군인, 각종 관청에서 사역되는 관노비와 가내 사노비들로 구성되었고 관할구역은 도성 안과 성 밖 10리(성저10리) 지역이었으며, 대체로 동쪽은 우이천과 중랑천까지 남쪽은 한강변과 용산에 이르렀으며, 서쪽은 양
Ⅰ. 서론
조선 태조는 1392년 즉위 후 민심의 안정을 위하여 국호를 처음에는 고려라 하였고 수도를 그대로 개경에 두었으며 국가제도·풍속·언어 등 모든 면에 걸쳐 고려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다 동년 12월에 국호를 정식으로 조선으로 정하였다. 이와 같이 조선의 정치조직은 고려말기의 것을 토대
1. 한성부
조선시대 한성부 행정구역의 범위는 백악산에서 인왕산을 거쳐 목멱산 정상을 지나 다시 동쪽으로 가다가 북쪽으로 낙타산을 지나 다시 백악산으로 연결되는 약 18Km의 도성안과 도성 밖 10리로 하였다. 도성으로부터 10리까지라 하더라도 그 경계는 대체로 산능선이나 하천으로 하였기 때문
한성부 인구는 약 10만 명 선이었으며, 대부분 귀족관료와 그 가족들, 군역에 종사하는 군인, 각종 관청에서 사역되는 관노비와 가내 사노비들로 구성되었고 관할구역은 도성 안과 성 밖 10리(성저10리) 지역이었으며, 대체로 동쪽은 우이천과 중랑천까지 남쪽은 한강변과 용산에 이르렀으며, 서쪽은 양
1-1) 한성부 시대의 동회정책
한성부시대의 주민조직
조선 전기 - 리里 활용
16세기 후반- 계契의 확대
갑오개혁 이후 - 동洞의 성격 변화
(2) 한성부 시대의 주민통제
인조 대의 호패사목號牌事目
15세 이상의 모든 남정에게 호패를 발급하여 세원을 관리하는 것이 목적
숙종 대의 오가통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