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부의 행정구역의 변천
<1910년대 >
1910년 8월 29일 이른바 한일합방이 공포되고, 일제에 의하여 주권이 강탈되면서 수도행정의 기능을 담당하던 한성부는 조선총독부의 소속관서와 지방관제의 개편에 따라서 종래 수도의 성격을 상실하고 경기도 소속의 한 개의 부로서 그 기능이 대폭 축소되고
근대적 부분이나 서구적 분야에 과도한 지출이 이루어지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때문에 항구도시는 다양한 인구가 집결하며(토착민과 이주집단), 수직적으로 분열한다. 또한 이처럼 변화된 사회구조를 통제하고 조정하기 위한 제도들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제도의 변화가 감옥, 병원, 경
조선의 사람들은 식민지시기를 거치면서 ‘근대화’되가는 사회질서를 느낄 수 있었다. 과거와는 다른 형식으로 서로간의 경제활동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고 또 새로운 교육제도에 점차 익숙해지는 사회를 맞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서 어떻게 농민들의 삶이 변화 되
행정체계 개편으로 축소된 기존의 한성부(漢城府) 영역을 회복한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겠지만, 조선시대의 성벽 밖 성저십리(城底十里) 지역이 원칙적으로 도시화와 개발이 제한되는 지역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1936년의 영역 확장은 근대적인 도시화 과정에 의하여 진행된 도시 확장이 처음으로
* 우리나라 행정구역의 변천
우리나라 행정구역의 역사는 밀리 한사군의 군현제까지 소급할 수 있지만 근대적
의미의 행정구역은 갑오개혁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전근대적이지만 수많은 개편을
겪으면서 유지되어 온 행정구역은 1894년의 이른바 갑오개혁으로 오늘날과 같은
행정구역의 골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