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1875년 강화도조약, 1882년 임오군란, 1884년 갑신정변 등 급변하는 정국에 이어 1894년 청일전쟁, 동학농민전쟁, 갑오개혁 등을 겪으면서, 한성부에는 새로운 근대적 시설인 철도, 전차, 전신전화 등이 설치되고 서양식 학교, 병원, 상수도 등이 운용되어 외형적으로는 근대화의 모습을 나타냈다.
근대사의 산실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지정학적으로는 동북아의 중심도시로서 향후 대한민국이 세계로 뻗어 나갈 요충지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인천은 서해안의 경기만에 위치하고 북쪽으로는 한강하류 유역과 황해도 옹진반도의 장연군에 접하며, 동쪽으로는 서울시 강서구 및 경기도 김
건축 규제 일변도의 한옥보존정책은 거주민들의 생활환경을 악화시키고 주민들의 민원을 초래하였으며, 1991년 규제완화를 계기로 한옥이 헐리고 다세대/다가구 주택들이 난립하게 되었다. 이후 2001~2004년 한옥보전을 위한 북촌사업을 시작하여 북촌지역 645,000㎡(약 195,000평)에 약 2,200여 건축물 중 860
역사적인 사건을 살펴보더라도 인천의 지정학적으로 중요성은 두말할 것 없다.
우리의 학습 목표는 ①인천관측소를 중점으로 하여 인천에 남아있는 건물과 도로를 살펴보며 일본 제국주의의 흔적들을 살펴보고 ②그들이 말하는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인천이 어떤 모습으로 성장했고 당시의 모습을
2)창경궁
조선의 궁궐 중 하나인 창경궁은 일제 이후 사람들에게 창경원(昌慶苑)으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창경궁은 일제에 의해 가장 처참하게 유린당한 궁궐로써 뼈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사진 2. 춘당지
일제는 순종을 위로한다는 명목을 앞세워 선인문 보루각터에 동물원을 짓고, 곰,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