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의 비극이 일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영조 38년(1762) 5월13일 세자를 불신하던 영조는 세자를 폐서인 시키고 뒤주에 가두도록 명을 내렸다. 그리하여 8일 만인 5월21일 세자는 창경궁 남문인 선인문 부근에서 숨을 거두었는데, 이 사건을 임오화변(壬午禍變)이라 한다. 2년 뒤 영조는 세자의 죽음
몰락까지 ④ 순조의 탄생에서 자신의 회갑연까지의 일을 기술하고 있다.
이런 其一의 특징은 임오 화변이나 갑신처분에 대해서는 최대한 자신의 감정을 억제한 반면, 친정 중심의 일에 대해서는 지나칠 만큼 세밀하게 적고 있는 것이 대조적으로 비쳐져 『한중록』의 집필 의도를 알 수 있게 한다.
알려지지 않은 창작 년대와 창작자에 대해 알아보고 인현왕후전의 장르와 주제, 시대 배경과 실록과의 비교, 그리고 각 등장인물들 간에 관계와 더불어 동시대에 지어진 사씨남정기 등의 작품과의 비교를 통해 인현왕후전의 문학사적 위상과 인현왕후전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알아보고자 한다.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정사나 『대동야승』, 『연려실기술』과 같은 야사 등을 근거로 하여 궁중문학 작품들의 장르를 수필이나 소설, 실기문학 등으로 규정하기도 했다.(이금희, 2001)
그러나 『계축일기』,『인현왕후전』,『한중록』은 궁중의 비사를 소재로 한 작품이면서도 각각 그 성격이 같지
Ⅰ. 답사 장소 선정 이유
답사 장소를 정하기 위해 고민하던 중 조원들은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창경궁 우리나라 4대 궁궐의 이름들을 하나 둘씩 이야기하였다. 멀리 교외로 나가지 않아도 조선의 고풍을 느낄 수 있는 궁궐들이 서울 시내 가까이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 답사지를 궁궐로 정하게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