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윤의「해동역사」 등에 노래와 관련된 사연을 소개하면서 한국 노래로서의 관심을 환기 하였다. 차천로의「오산설림초고」에서 한치윤의「해동역사」에 이르기까지 <공무도하가>에 관해서는 그에 관련된 소개뿐이었고 본격적인 연구는 1922년 안자산의 「조선문학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한치윤은 《해동역사》에서 이 작 품의 배경인 조선(朝鮮)을 낙랑군(樂浪郡) 조선현(朝鮮縣)으로 보고, ‘예문지(藝文志)’에서는 기자조선(箕子朝鮮) 시 대의 작품이라고 해석하였다. 이러한 해석은 공무도하가를 고조선 시대의 시가로 보는 주요한 근거가 되었다. 고조 선 시대에 민간에서 불
한치윤의 해동역사(海東繹史)에 람방 위 조선시선(藍方威朝鮮詩選)을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삼한의 부인은 반발(盤髮)인 일종의 얹은머리를 하였는데 모두 아발(鴉髮)을 지었고, 남은 머리카락은 늘어뜨렸으며, 미혼모는 말아서 뒤로 처지게 늘어트렸다.” 이는 출가녀(出嫁女)는 반발(盤髮)
여옥
▶시대 : 고조선 대
▶명칭 : 공후인이라고도 함
▶주제 : 임의 죽음 애도
▶출전 : 한치윤 [해동역사] (한역시 형태로 전함)
▶의의 :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서정 시가, <황조가>와 함께 최고(最古)의 서정가요. 전설적이어서 작자나 지은 연대 등의 확실한 문헌 고증이 불가능함
[물의 의미]
한치윤이 지은 『해동역사』 등에 실려 전한다. 지금까지 전하는 『계림유사』의 체재는 판본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으나 표제부분은 계림유사삼권송손목봉사고려국신서장관(鷄林類事三券宋孫穆奉使高麗國信書狀官)으로 되어 있다. 총 361어휘가 수록되었으며 천문·지리·화목·조수·충어·기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