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촌의 문화적 활동에도 일정한 편차를 드러내게 된 것이다. 사대부 계층의 대표적인 문화적 활동인 시조의 창작과 향유 역시 이 시기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경․향간의 차이를 확연히 보이며 전개 되었다. 서울의 경화사족은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면에서 우월한 지위를 점했다. 그들의
사족이 나타나게 된다. 또한 사족층 내부에서도 유력사족과 그렇지 못한 하층사족 · 이향사족은 배타적 관계에 놓여있었다. 17세기 시조에 작가층이 사족층 내부에서 다층적으로 확대되어 나타나는 것은 이러한 사회적 현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3) 신흠 시조의 창작배경
신흠의 시조는 계축옥사
<시조의 종류와 향유층>
모든 분류가 그러하듯 시조의 경우에도 절대절명의 유일한 분류법이란 있을 수 없다. 무엇에 초점을 맞추어 분류할 것인가와 같은 분류 기준이 달라짐에 따라 분류 내용도 여러 가지로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시조의 학문적 이해를 향해 첫걸음을 내딛는
고려시대에는 개경(중앙 무대)에서 벼슬하던 귀족계급을 경족京族이라 하고 지방세력(地方土豪)을 향족鄕族이라 하였다.
조선시대는 고려때 향족과 유사한 양반계급인 사족士族들이 지방으로 분산 하여 거주 하였는데,이들을 재지사족(在地士族)이라 하였다. 향촌을 지배하던 세력이라고 하면 맞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