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철의 「기교주의설의 허망」은 1935년 12월에서 1936년 3월 에 걸쳐 있었던 ‘기교주의논쟁’의 기교주의논쟁은 논자의 논의를 집중적으로 구명하는 맥락에서 연구되어왔다. 이런 논의 중에서 대표적인 것으로는 김기림을 중심으로 한 한계전과 김윤태, 모더니즘 일반에 대한임화의 비판을
김기림과 임화는 자체의 시론 전개 과정에서 낭만주의를 휴머니즘 수용의 차원과 사회적 리얼리즘 수용의 차원에서 재검토하게 된다. 이런 상화에서 순수시론, 낭만주의시론을 전개해 왔던 박용철이 논쟁에 가세하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워 보인다.
<기교주의논쟁의 양상>
<담천하의 시단 1년
주의를 비판해 온 김기림의 시론의 전개과정에서 보여준 상당한 변화라고 볼 수 있다.
보다 본격적인 기교주의논쟁은 김기림이 발표한 「현대시에 있어서의 기교주의의 반성과 발전」 조선일보, 1935. 2. 10 ~14
부터이다. 김기림은 이 글에서 기교주의를 “시의 가치를 기술을 중심으로 하고
시론은 이른바 ‘기교주의논쟁’을 통해 한국 현대시론의 이론적 발전에 적잖은 기여를 남긴다. 기교주의논쟁이라 함은 1935년 카프가 해산되는 시기를 즈음하여 김기림과 임화, 박용철 삼자 간에 벌어진 시 일반에 관한 논쟁을 말한다. 이는 시사(詩史)의 흐름에 대한 점검으로부터 시의 창작과정론
시인들이 얼마나 정확히 침통한 시대적 현실을 감수하고, 시대정신을 어떻게 자기의 시적 언어를 통해 반영․표현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봄을 중요한 과제로 보고 있다.
2. 복고주의 비판
고전문학의 부흥, 재음미를 주장하며 나타난 복고주의는 1935년 문학계의 가장 큰 테마의 하나였다. 임화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