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음악성은 희미한 몽롱을 냉험하게 배격한다.
이는 현대시의 아주 정확한 포착이 아닐 수 없다. 그의 내부생명·암시는 이성과 다르지 않으며, 운율관 또한 판에 박힌 정형운율을 배격할 뿐이지 결코 정형운율 그 자체를 배겨하지 않고, 자유운율 또한 바람직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급속한 유입과 확산은 이들의 작업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모더니즘에 대한 기존의 인식 역시 상당한 굴절의 과정을 겪지 않을 수 없게 되었는데, 그것은 결국 30년대에서와 같은 영미계, 대륙계 식의 단선적인 이해의 틀을 거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시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이에 사용된 소재 내지 상관물은 크게 산과 바다로 나뉘며, 각각 ‘산→풀 잎사귀(청청함)→산새(죄죄 제 흥을 노래함)’와 ‘바다→파도(중중 흰 거품이 밀려옴)→배(흰 돛)’로 도식화할 수 있다. EBS독학사연구회 저,『한국현대시론』,지식과 미래, p.11
김억의 시<오다가다>
시문학은 서구문학의 영향으로 개성 있는 율격을 지닌 새로운 형태의 시들이 나타났다. 최초의 주간지인 <태서문예신보>(1918)와 본격적인 문예지인 <창조>(1919)등의 신문과 잡지가 등장하여 시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지면을 제공함으로써 현대시의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김억은 프랑스의 상징주의 경향
시기를 대상으로 하고 있었음에도 아직도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시기가 지닌 의미의 중대함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아울러 일제 강점기의 문학이 일제의 탄압으로 말미암아 비록 왜곡되긴 했지만 단일 민족문학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시기의 중요성은 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