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시의 방황과 모색
1910년대의 시문학은 서구문학의 영향으로 개성 있는 율격을 지닌 새로운 형태의 시들이 나타났다. 최초의 주간지인 <태서문예신보>(1918)와 본격적인 문예지인 <창조>(1919)등의 신문과 잡지가 등장하여 시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지면을 제공함으로써 현대시의 발전에 이바지하
문학작품에 나타난 특정한 민족의 정신적 흐름을 기술하는 것이다. ‘정신적 흐름’이라는 것은 그 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민족정신을 말하고, ‘정신’이라는 말은 민족의 상상력, 풍속, 사회상, 생활상, 예술양식, 율격, 구조, 주제, 원형 등을 두루 포괄하는 것을 의미한다한국 현대문학의 개
모색되어질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끈질긴 물음이다. 그는 그 물음의 해답을 구체적인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귀납적으로 찾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그의 작업은 우리 현대사를 개인의 자유라는 기준에서 살피는 것으로 진행됐다. 지금 ‘내’가 처해 있는 구체적인 사회에서 나를 자유롭고 편안
모색해가던 시기였다.
김사량의 본명은 김시창이고 평양에서 출생했다. 양친의 이름은 알려져있지 않지만 그의 어머니는 미국 유학을 다녀오고 만주에 지점을 가진 백화점을 경영하던 사업가로 알려져 있다. 김사량을 포함하여 2남 2녀의 4남매였고 그 중에서 셋째로 태어난 김사량은 유년 시절을 유
문학의 가장 커다란 관심사로 제기되었어야만 함에도 불구하고, 그 문학적 형상화 작업이 문학외적인 제약으로 불가능해졌음을 지적할 수 있다. 민족분단의 비극을 앞에 두고 일상의 현실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시 사회의 경직성이 자유분방한 문학적 상상력을 그만큼 억압하고 있었기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