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진보된 예술은 음악뿐이며, 표현의 자연적 매개자 또한 음악뿐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판에 박힌 정형성을 버리고 내부생명을 추구하는 상징주의 시의 음악성은 희미한 몽롱을 냉험하게 배격한다.
이는 현대시의 아주 정확한 포착이 아닐 수 없다. 그의 내부생명·암시
시대의 고전주의, 르네상스시대의 고전주의, 17~18세기의 고전주의 등 여러 차례에 걸쳐 나타난 문화운동이다. 17~18세기의 고전주의를 다른 고전주의와 구별하기 위해 신고전주의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고전주의는 최상급의 작가와 작품을 본받아서, 그 고전들이 지닌 특질과 규범들을 본따서 그
시론의 도입이 우리 시단의 건강성 회복을 위해서는 필수적이라고 이해하고, 이를 활발히 창작에 반영시킬 것을 제안한다.
김기림의 「시작에서의 주지적 태도」(1933. 4)와 「포에시와 모더니티」(1933. 7), 그리고 최재서의 「현대 주지주의 문학 이론의 건설 - 영국 평단의 주류」
시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이에 사용된 소재 내지 상관물은 크게 산과 바다로 나뉘며, 각각 ‘산→풀 잎사귀(청청함)→산새(죄죄 제 흥을 노래함)’와 ‘바다→파도(중중 흰 거품이 밀려옴)→배(흰 돛)’로 도식화할 수 있다. EBS독학사연구회 저,『한국현대시론』,지식과 미래, p.11
김억의 시<오다가다>
시들이 나타났다. 최초의 주간지인 <태서문예신보>(1918)와 본격적인 문예지인 <창조>(1919)등의 신문과 잡지가 등장하여 시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지면을 제공함으로써 현대시의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김억은 프랑스의 상징주의 경향의 시를 번역하여 발표하는 한편, 민요적인 가락의 시를 창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