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점으로 본다면, 그 이후 이루어진 그에 대한 연구도 이전과 같이 상반된 관점을 드러낸다. 월북 작가로 오인된 탓에 본격적 논의는 해금 이후에나 가능했지만 5,60년대에도 유종호 「현대시의 50년」(『사상계』,1962,5)에서 모국어를 통해 시의 예술적 자율성을 획득했다는 점과 독창적인 운율을 창조
연구에서는 이러한 임화의 낭만주의에 대해 논의를 전개하기 위해서 문학의 논리에 수록 된 임화의 시론 중 <낭만적 정신의 현실적 구조> 와 <위대한 낭만적 정신> 등을 분석하였다. 이 시론들을 연구하여 임화가 추구하였던 낭만적 정신, 즉, 임화의 낭만주의가 무엇인지를 도출해 내었으며, 또한 이 임
시가 민족적인 서정을 가장 한국적인 가락으로 되살림으로써 시의 시다움을 실천적으로 보여 주었다는 점에 이유를 두고 있다. 김재홍, 『한국현대시인연구』, 일지사, 1986, 29쪽.
부정적인 김재홍, 위의 책, 203쪽ː임화, 김기림은 그의 시를 감상벽으로 보고 전세기의 낡은 유물로 보았다. 송욱은 김
시기였다. 이후, 사회적으로는 러시아 혁명을 배경으로 낭만주의와는 사뭇 다른 현실적인 목소리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바로 프로문학이다. 이들의 방향은 현실부정의 의식으로 출발했지만 현실의 환멸이나 도피가 아닌, 현실개혁의 방향으로 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역사문제연구소 문학사
시는 20년대 정지용이 보여주던 미래파적 요소나 임화가 보여주던 초현실주의적 요소가 새롭게 계승된 것이라고 보고, 이러한 그의 아방가르드적 요소는 후대 모더니즘 시인들에게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계승된 것으로 본다.
김광균과 이상에 대한 간략한 언급과 더불어 그들의 시에 대한 연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