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회통』과 같은 법전이 나왔지만 『대전』에서 세워놓은 제도의 기본 틀과 통치규범의 기본 원칙에는 변함이 없었다. <譯註 經國大典 (윤국일, 홍기문, 김석형) 여강 p.471 본문내용 인용>
조선후기까지 내려오기 때문에 조선의 기본 국가 이념을 담고 있다고 판단하여 선택하게 되었다.
호패(號牌) 호패(號牌) : 조선 때, 열여섯 살 이상의 남자가 차던 길쭉한 패. 한 면에 성명과 난 해의 간지(干支)를 쓰고 뒷면에 관아의 낙인(烙印)을 찍었음.
<동아 새 국어사전 이기문 동아출판사>
제도호패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보이는 때 태조 13권 7년 1월 16일 (갑자) 001 / 도평의사사에서 호패법
제도·풍속·언어 등 모든 면에 걸쳐 고려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다 동년 12월에 국호를 정식으로 조선으로 정하였다. 이와 같이 조선의 정치조직은 고려말기의 것을 토대로 하여 개선·발전시킨 전체적 지배조직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조선시대가 정치·경제·사회 등의 제 영역에서 고려적인
인본주의에 있었다. 유교는 현실적 기반에서 출발하였던 것인 만큼 이러한 유교의 현실성은 그 교의를 사회윤리 및 법치사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유교는 그 중심개념을 인이란 윤리철학에 두고 있으며 그 궁극적인 목표를 순종체계에 따른 질서에 의하여 조화 안정된 사회에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