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흥선대원군의 생애
대원군은 영조의 현손 남연군구의 넷째 아들이며, 조선 제 26대왕 고종의 아버지다. 철종때에는 안동 김씨가 세도권을 잡고 왕실과 종친에 갖가지 통제과 위협을 가했으므로, 호신책으로 시정의 무뢰한들과 어울려 파락호의 생활을 하였다. 안동 김씨 가문을 찾아다니며 구걸
Ⅰ. 흥선대원군의 생애
대원군은 영조의 현손 남연군구의 넷째 아들이며, 조선 제 26대왕 고종의 아버지다. 철종때에는 안동 김씨가 세도권을 잡고 왕실과 종친에 갖가지 통제과 위협을 가했으므로, 호신책으로 시정의 무뢰한들과 어울려 파락호의 생활을 하였다. 안동 김씨 가문을 찾아다니며 구걸
흥선대원군은 "백성을 해치는 자는 공자가 다시 살아난다 해도 내가 용서치 않는다." 는 단호한 결의로 47개소만 남기고 대부분의 서원을 철폐하였습니다. 또, 삼정의 문란을 시정하기 위해 양전을 실시하고, 양반에게도 군포를 징수하는 호포제를 실시하였으며, 환곡제를 폐지하고 사창제를 실시하였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정말 나라의 발전에 이바지한 것이 크지 않은지 정확히 알기 위해, 그리고 통상수교거부정책이 정말 안 좋기만 했던 정책인지 확인해보려고 합니다. 우선 흥선대원군의 업적과 일반적 해석과 평가를 찾아보겠습니다.
1. 흥선대원군의 업적
우선 흥선대원군은 정치 권력을 위임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한 사건.
1871
신미양요(辛未洋擾)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미국 함대가 강화도를 침략한 사건.
1876
강화도조약(江華島條約)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일본과 맺은 조선 최초의 근대화 조약이자 불평등조약 (해안 측량권, 치외법권 허용).
1882
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