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서시랑에 삼았다.
秦客系武氏從?子, 具有小智, 受職後日侍宮中, 與武氏同改造十二字, 由小子錄述出來。
진객계무씨종자자 구유소지 수직후일시궁중 여무씨동개조십이자 유소자녹술출래
진객은 무씨 사촌 누이 아들로 조금 지혜가 있어서 직책을 받은 뒤에 날마다 궁중에서 섬기며 무씨와 글자 12
봉서(鳳瑞)는 수복의 현손으로 이조랑(吏曹郞)에 올라 인조의 사친추숭(賜親追崇)을 반대했으며, 평안 감사(平安監事)로 재직시 선천 부사(宣川府使) 이 계가 잠상(潛商 : 법령으로 금하는 물건을 암암리에 팔고 사는 장사) 문제로 청나라에 가서 망군부국(忘君負國)의 고자질로 조선의 조정을 믿고 전횡
却說元擴廓病歿後, 尙有無太尉納哈出, 屢侵遼東。
각설원확곽병몰후 상유무태위납합출 루침요동
나하추 納哈出, Naghachu:중국 원말·명초의 무장. 나하추의 집안은 대대로 요동지방을 정벌하는 데 공이 컸다. 원 말기인 1355년 그는 강남 전투에서 명나라 군대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북방으로 돌아가겠
却說常遇春偶罹暴疾, 將軍事囑托李文忠, 復與諸將訣別, 令聽文忠指揮, 言訖卽逝, 壽僅四十歲。
각설상우춘우리폭질 장군사촉탁이문충 부여제장결별 령청문충지휘 언흘즉서 수근사십세
각설하고 상우춘이 우연히 갑작스런 질병에 걸려 장군의 사건을 이문충에 촉탁하고 제장수와 결별하며 이문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