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주희의 생애
주희는 1130년, 중국 복건성(福建省) 우계(尤溪)현에서 태어났다. 당시는 송나라가 북쪽 오랑캐인 금(金) 나라에게 쫓겨 양자(陽子)강 남쪽으로 내려와 남송(南宋)을 세운지 얼마 안 된 혼란한 시기였다.
당시 송나라 정계(政界)에서는 금나라와 싸워서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아야 한다
Ⅰ. 삼국시대의 유학(유학사상)
유학사상은 한학의 도입과 함께 한국에 전래된 것이지만, 그것이 국가의 승인을 얻어서 관변사상으로 통치지위를 갖게 된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371˜384) 때의 일이다. 소수림왕 2년에 유학의 교육기관으로 태학이 설립되면서 5경과 3사가 교과서로 채택되었다. 구당
주희의 인간관
우선 주희의 인간관이라 하면 가장먼저 이(理)와 기(氣)를 떠올리게 된다. 주희는 이 이(理)와 기(氣)의 관계에 대해 “이(理)는 도(道)를 가리킨다. 도(道)는 물질적인 형태를 지니지 않으며 그것을 넘어서 있고, 만물을 비롯되게 하는 뿌리이다. 기(氣)는 물질적인 것들을 가리킨다. 그
송대의 리학은 남송의 주희(朱熹: 쭈시)에 이르러 집대성되었다. 주희는 공자의 뒤를 이어 중국역사에 있어 영향력이 가장 심원한 사상가이자 교육가이다. 그의 학설은 남송으로부터 청말에 이르기까지 통치자들의 추숭을 받아 관학이 되었다. 그가 지은 ꡔ四書集注ꡕ는 명청 양대에 걸쳐 과거
주희의 사상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대체로 40세 무렵에 그의 사상의 대강이 확립되었다고 본다. 46세 때 여조겸과 함께 《근사록》을 편찬하였고, 북송의 대표적 도학자 주돈이·정호·정이·장재의 언론 622조를 문목별로 14권으로 나누어 1책으로 종합하였다. 주희의 학문은 이 4명을 중심으로 북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