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스스로도 이러한 고리의 노예로 남기보다는 자신의 인생과 사회의 주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과감한 문제제기를 해야 할 것이며, 그것을 새로운 학생운동으로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Ⅱ. 1940년과 1950년대의 학생운동
해방이 되자 학생들은 자주적 독립국가 건설을 위해 발족된 ‘건준’의
우리의 부모님 세대들이 대학생이었던 1970/1980년대와 현재의 우리 대학생들이 살아가고 있는 1990/2000년대의 대학생 문화는 많이 다르다. 그 이유는 일단 시대의 사회, 정치, 경제적인 급격한 변화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학생운동과 데모로 대표되는 1970/1980년대 대학생들과, 이미 탈정치적으로 변
학생운동을 독점하였다. 그 후 신탁통치 반대운동과 국립 서울대학교 설치안을 둘러싼 대립을 계기로, 우익계 학생들이 세력을 확장하여 학생운동의 주도권을 잡았다. 그러나 우파 학생운동은 이승만 정권에 의해 어용화, 관제화되면서 일반학생들로부터 호응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3)1960년대
그
학생과 대통령 면담 후 학원복귀 선언
4월 17일 대학생 한일회담반대 시위
5월 20일 5.20 학생대회
6월 3일 6.3 항쟁
한일협정 비준 반대 투쟁
1970년대
서울대학교 10.2 시위
민청학련 사건
- 발단 : 긴급조치 4호
- 의미 : 학생들이 노동자, 농민문제에 관심
학생운동에 조직성 부여
운동에서 학생운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큰 곳으로, 지식인들(교수·문인)들이 시국정세에 비판을 가하고, 이를 따르던 학생들도 많았다.
15일 서울역 회군 서울역 회군: 각주4)에서 보듯이 학원민주화열기는 5월 15일 밤부터 16일 아침까지 계속된 서울지역 23개 대학과 지방의 23개 대학의 총학생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