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모순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인 민중을 중심으로 하는 개혁일 때에만 의미가 있을 것이다. 즉 노동자는 이 땅의 진정한 개혁의 주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운동은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적 성격에 의해 노동자의 존재조건 그 자체로부터 변혁운동의 주체로 발전해 가는 필연성을 가지고 있다.
운동 직전까지 수원교구에서 傳敎師, 共宣員, 典制員으로 활동하였다. 3.1운동 때에는 보성전문학교 학생으로 탑골공원과 태화관의 상황을 연락하였으며, 수원과 남양 제암리에서 3.1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1920년대에는 天道敎靑年會 水原支會를 창립하고 초대 支會長으로, 천도교중앙총
운동과 외교독립활동 과정에서 부르주아민족주의자들이 주도하는 평화적이고 타협적인 민족운동의 한계를 인식했다.
셋째, 당시 대중들의 처지와 3·1운동의 참여경험, 그리고 대중운동의 발전은 사회주의 이념이 확산되는 기본적인 토양이었다. 특히 농민과 노동자 등 절대다수의 대중들은 민족적·
정부’수립론은 국외 독립운동기지화의 핵심 거점인 노령 연해주 지역에서의 활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864년 이후 형성되기 시작한 노령 연해주의 한인사회는 1910년의 ‘합방’까지 20여만 명을 헤아렸다. 이들은 황무지 개척과 러시아의 시베리아 개발추진에 노동력을 제공하면서 생활터전을 닦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