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혁명이 어떤 평가와 논란의 대상이 되었든지 간에 한 마디 덧붙이자면 분명한 것은 68혁명은 부조리를 말하려 했던 운동이었지 결코 악이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68혁명을 일으킨 68세대들은 기성세대들과 달리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나 물질적 풍요 속에서 자랐다. 따라서 그들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빠진 세대를 '회의적 세대'라고 불렀다.
3. 프랑스의 경우 : 레지탕스와 콜라보, 68세대
파시즘에 저항한 사람들을 '레지탕스', 히틀러 괴뢰 정부에 협력한
고급각료를 '콜라보'라고 지칭한다. 68세대는 1968년 대학생들과 10대들을 아우르는 지칭어이며 전 세계적인 68혁명을 일으킨 장본인들이다.
68혁명의 정신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현대 서구사회의 문화적 모태가 되고 있다.
68혁명을 주도한 신좌파는 ‘혁명’의 개념을 전통좌파의 정치적 혁명 개념과는 달리, 개인의 의식 변화와 내적 변혁의 체험에서 도출한다. 68세대에게 혁명은 개인의 삶의 양식과 욕망, 세계관의 변화를 의미하였고,
세대문제를 주목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만하임은 한정된 생명력을 갖는 인간 공동체가 생물학적 생식을 통해 구성원의 재생산을 이루어낸다는 사실이, 인류의 문화적 제도적 요인들의 지속과 유지를 위한 세대 간의 계승을 만들어내는 배경이라고 주장하였다.
프랑스의 ‘68혁명세대’와
1968년 세계는 동시적인 대 격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 대 격변의 시작은 프랑스의 대학 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자본주의 나라들은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지만 속사정은 달랐습니다. 60년 대 후반, 프랑스의 실질 임금은 상승하였으나 노동자 계급 대부분은 여전히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