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과 관련된 문제들 가운데 여전히 뚜렷한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인권개념 자체에 대해서도 서구적 기원을 가지는 보편적 인권개념이 인민의 생존권과 개발권을 우선하는 자국의 가치와 충돌된다고 주장하는 중국을 비롯하여, 유교논리에 뿌리를 둔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A
Ⅰ. 서론
중앙위원회는 희생자 신고가 완료됨에 따라 희생자 신고에 따른 사실조사 및 심의지침을 마련하고 희생자에 대한 사실조사 및 심의를 본격 추진하고 있다. 제주4.3특별법 제4조의 실무위원회 사실조사와 제3조의 중앙위원회의 심의.결정 방침에 따라 추진하는 이 작업은 실무위원회가 희생
학살은 주로 전략적 이유에서 비롯된다. 이외에도 사적 원한에 의한 학살도 존재한다.
③ 언제? - 그 시기는 언제인가?
전면전의 발발이 1950년 6월 25일인 것도 이유가 있듯이 학살도 아무 때나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서울에서 인민재판에 의해 우익이 학살당한 사건은 1950년 6월 28일부터 9월 28일까지, 1
9월 21일 제주도에 계엄이 내려지고 해제되기까지 무장세력 진압과정 중에 불법적인 학살이 자행된 결과, 당시 제주도민 전체인구의 10%에 가까운 3만명 이상이 무차별적으로 학살되는 참상을 겪은 민간인 학살 사건이다.
2000년 6월부터 2001년 5월까지 4•3사건 관련 희생자 신고접수를 받은 결과,
9월 3일 주석 김구가 삼천만 동포에게 고함이란 성명과 14 항의 임시정부 당면정책을 발표하였는데 위 김구의 성명에서는 현 단계를 복국의 임무를 완전히 끝내지 못한 건국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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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국전쟁기의 학살 문제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의 양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전쟁 시기를 기준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