康熙帝의 꿈과 현실
淸나라의 4대 황제(8세 등극, 61년 재위)
세계 最强國의 기반 구축 이후,
正胤帝, 隆熙帝를 이은 131년 간 세계최강을 이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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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을 위한 일이 아니거든 하지 마라!”
대저 정치를 잘 하려면 지난 시대의 治亂의 자취를 살펴보아야 한다. 지난 시대의 治亂의 자취를
康熙帝)가 즉위한 후 통일제국으로서의 긴반을 확고히 다지고 혼란한 사회를 정비하는데 성공했다. 관제는 명조(明朝)의 그것과 대동소이한 것으로 내각과 8부를 설치했으며 정부의 여러 관직에 원(元)대와는 달리 만주인뿐만 아니라 한인(漢人)도 등용하는 비교적 관대한 인사정책을 실시했다. 외교적
康熙帝)에 이르러 비로소 전 중국을 통일하였다.
더구나 강희제는 1689년 러시아제국과 네르친스크조약을 맺음으로써 19세기 중엽까지, 러시아제국이 동진(東進), 남하하는 것을 억제하였다. 또 간간이 분쟁이 일던 조선과의 경계도 정하여 백두산에 정계비(定界碑)를 세웠다(1712). 또 계속되는 옹정(雍
康熙帝)가 위에 오른 지 51년이 되는 청나라의 전성기였다. 더구나 바로 이 1712년은 백두산 정계비를 세워 두 나라 사이의 경계를 확정하고, 사행의 예단(禮單)과 국경을 넘는 조선 사람의 사의(査議)를 감면하는 새로운 외교 관계를 정립한 획기적 관계 개선의 해였다. 따라서 이 임진사절(壬辰使節)은
康熙帝/1654.5.4∼1722.12.20) : 청나라 전성기 제왕
중국 청(淸)나라의 제4대 황제(재위 1661∼1722).
이름 현엽(玄燁/玄曄).
중국 역대 황제 중에서 재위기간이 61년으로 가장 김.
옹정제(雍正帝)·건륭제(乾隆帝)로 계승되어 전성기를 이룸.
중국 최대의 유서인 《고금도 서집성》과 《강희자전》 등 많은 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