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괘릉이라는 이름의 유래
-연못에 세워진 원성왕의 릉
괘릉이란 '시신을 넣은 관을 매달아 놓은 왕릉'이라는 의미이다. 이말은『동경잡기』「능묘조」에 의하면, '괘릉은 임진왜란 이후에 처음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왕릉이 조성되기 이전에 작은 연못이 있어 그 곳을 메우고 왕릉을 마련했는
무인석의 규모와 조각양식은 당시 사람들의 유교사상과 정치사를 반영하고 있어서 역사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뛰어난 문화 자료에 속한다. 또한 조선 왕릉에는 불교, 도교 등 우리나라의 다양한 철학과 세계관이 어우러져 있다. 왕릉 주변 원찰(왕이 극락왕생하기를 비는 사찰)은 불교적 요소가 반영
1.왕릉의 디자인 원리 및 원칙
1-1. 조선 왕릉의 조경원리
다양한 전통 사상 반영과 조화
풍수지리 사상
다양한 식재 배치
1-2이집트 왕릉의 조경원리
이집트인의 사후세계관 반영
이집트의 기후와 자연환경
왕의 권위 표현
남북축의 직교구조
.
.
3. 이집트 왕릉의 조경원리
1) 분묘
엄숙하게 행해진다.
5. 왕릉의 석물 중 문인석, 무인석의 규모와 조각양식은 예술성을 각기 달리하며 시대별 역사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6. 유교문화의 전통아래 장례전통과 풍수사상을 간직하고 있다.
7. 동아시아 무덤 건축 경관의 중요한 단계를 보여주고 있다.
7. 조선 왕릉의 위치
무인석을 배치했다. 정자각은 합장 봉분에 축이 맞추어진 배치이나, 홍살문의 위치가 틀어져 있어 참도는 꺾인 축형이 되었다. 현재의 홍살문은 후대에 옮겨진 듯하며 원래의 위치에 초석이 남아 있다. 또한 수복방과 수라간의 위치가 정자각 바로 옆까지 올라간 특수한 예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