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낙엽의 청취가 채 가시기 전에 11월 25일 우리는 우리 나라 화엄의 본찰이자, 국토수호적 의미로 건립되었던 호국사찰인 부석사를 찾았다.
중․고등학교 때 국사 책에서 부석사 무량수전에 대해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정도로 어쩔 수 없는 친숙함(?)으로 묻혀진 그 영주 부석사지만, 어
부석사? 글쎄, 흔하디 흔한 표현 그대로 부석사는 나를 사로잡았었다. 가는 길에 미술사학자 유홍준 교수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부석사 편을 읽어보았었다. 흥행하는 영화도 너무 기대를 하고 보면 기대치가 너무 컸던 탓인지 아쉬움이 들게 마련이지만, 부석사는 예외였다. 동행했던 신부님의 재밌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이 왕명을 받들어 창건한 절로, 의상이 화엄의 대교를 폈던 곳이라 한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비가 조금씩 오기 시작했고, 우리들은 부슬비를 맞으며 답사조의 설명을 들었다. 제일 처음으로 본 것은 부석사 입구에 세워져 있는 당간지주, 당간지주를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조금이나마 해결하고자 기획되었다. 사전 예비조사와 더불어 한국 곳곳의 건축 명소를 둘러보고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직접 확인해 보았다. 직접 찾아가서 사진을 촬영한 곳은 안동 봉정사, 영주 부석사, 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경복궁 경회루와 근정전, 수원 화성, 전남 화순 운주사이다.
이 책은 유홍준 교수의 책으로 3권으로 되어있다. 첫 번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남도답사 일번지 두 번째 책은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세 번째 책은 말하지 않는 것과의 대화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남도 답사 일 번지는 작가인 유홍준 교수가 문화유산을 통하여 하고 싶었던 애기는 사랑과 관
제일 처음 답사길에 오른곳은 국토의 최남단, 전라남도 강진과 해남이다. 이곳은 작가가 여덟 번을 다녀온 곳이라고 한다. 시선을 별로 받지 않는 곳, 지금도 반도의 오지로 어쩌다가 답사객의 발길이나 닿는 조용한 시골이라고한다.
그러나 월충산, 도갑사, 월남사지, 무위사, 다산초당, 백련사, 칠량
1. 미륵사지 답사 선정의 동기
익산 주변에 사는 사람이라면 현장 학습 또는 미륵산 등산을 위해 누구나 한번쯤은 가보았을 법한 곳이다. 나 역시 이런 저런 이유로 미륵사지를 여러 번 가보았지만 갈 때마다 느꼈던 건 '정말 볼 것 없네.'라는 생각뿐 가슴에 남는것이 없었다. 사람도 몇 명 없는 썰렁한
작가 신경숙씨는 1963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으며,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85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겨울우화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 강물이 될 때까지(1990). 풍금이 있던 자리(1993). 오래전 집을 떠날 때(1996)가 있으며 장편소설 깊은 슬픔(1994). 외딴방(1995)과
우리나라는 문화유산의 통사적 박물관이다. 이 말은 우리문화 특히 지역문화를 답사할 때 그냥 쉽게 지나치기 쉬운 말이다. 답사는 그 말 그대로 사적지를 밟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 관행처럼 치뤄지고 있는 답사는 면도날로 선을 긋듯 한 시대의 단층을 자르고 오늘의 잣대로 해석하려는
2.예산의 연혁
예산은 백제 때 오산현(烏山縣)이라 하였고, 757년(경덕왕 16)에 고산현(孤山縣)으로 개칭하여 임성군(任城郡)의 영현으로 삼았다. 대흥을 백제 때 임존성 혹은 금주(今州)로 부르다가 경덕왕 때 임성군으로 고쳤다. 덕산은 백제 때 마시산군(馬尸山郡)이라고 불렸으나 경덕왕때 이산군(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