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天理)에 바탕한 제도를 구현하자고 강조하면서, 궁극적으로 옛 도에 복귀하는 개혁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천리·인도는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다를 것이 없으므로, 이를 따르고자 어기지 않으면 옛 도를 회복할 수 있다.’ 한국실학사상사/ p.94
또한 그는 천리의 실(實)은 인간의 내면적 체인(體認
천리(天理)에 바탕한 제도를 구현하자고 강조하면서, 궁극적으로 옛 도에 복귀하는 개혁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천리·인도는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다를 것이 없으므로, 이를 따르고자 어기지 않으면 옛 도를 회복할 수 있다.’ 한국실학사상사/ p.94
또한 그는 천리의 실(實)은 인간의 내면적 체인(體認
천리(天理)를 체인(體認)할 것을 주장하였다. 일찍이 말하기를 사람이 학문하는 까닭은 도리를 듣고자 하는 것이다. 도(道)를 서적에서 찾으나 얻지 못하니 도리를 내 마음에서 찾는 것이 옭겠다라고 했다. 이로써 진헌장의 심학(心學)은 양명학의 선구가 되었다. 이어 왕수인에게서 심학이 체계화되는
천리를 체인(體認)하는 방법'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의 문인 임광(林光)은 진헌장에 대해서 "선생께서 교육할 시초에 반드시 정좌케 하여 그 착한 실마리를 기르게 했다. 일찍이 말하기를, '사람이 학문하는 까닭은 도리를 듣고자 하는 것이다. 도(道)를 서적에서 찾으나 얻지 못하니 도리를 내 마음에서
却說?廷會議這一日, 軍機大臣世鐸、榮祿、剛毅、王文詔、啓秀、趙舒翹皆到。
각설청정회의저일일 군기대신세탁 영록 강의 왕문조 계수 조서교개도
각설하고 청나라 조정은 하루 회의하며 군기대신인 세탁, 영록, 강의, 왕문조, 계수, 조서교가 모두 이르렀다.
天色將明, 太后獨御儀?殿, 垂詢開戰事
미우라 쿠니오의「인간 주자」
……내게는 주자가 흔히 말하는 ‘인격자’로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그보다는 차라리 인간적인 모순을 잔뜩 짊어진 채 괴로워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그의 격렬한 성인갈망과 죽기 직전까지 일손을 멈추지 않았던 근면함은 자신의 불완전성에 대한 깊은 깨달음에
성리학과 양명학
송宋대에는 육조, 한漢, 당唐대와는 달리 정치적 무관심에서 벗어나 현실에 대해 끊임없이 각성하는 사대부들이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학문과 문화면에서도 깊이 강조되어 불교와 도교의 신비주의와 내세관이 사상과 학문을 지배하던 당대까지의 문화를 청산하고
< 정자(程子) >
목차
1. 이정의 생애와 관직생활
2. 이정의 학문과 사상
3. 이정의 저술 및 작품
4. 스승 제자 관계
◆ 정자는 누구인가?
중국 송나라의 정명도(程明道, 1032~1085)와 정이천(程伊川, 1033~1107) 두 형제를 말하며 이(二)정자라고도 한다. 모두 유교철학자.
1. 이정의 생애와 관직생활
정명도 [ 程明道
Ⅰ. 퇴계이황의 생애
퇴계는 경상북도 안동군 도산면 온계리에서 태어났다. 진성이씨 치(値)의 아들로 연산군 7년(1501) 11월 25일의 일이다. 아버지는 이때 40세, 어머니는 32세, 위로 형이 여섯, 누이가 하나인 7남 1녀 중의 막내아들로 탄생한 퇴계는 난지 7개월 만에 아버지를 여이었다. 그래서 여러 자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