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문헌 – 용비어천가(1445)
『中有古城 諺稱大金皇帝城 城北七里有碑 宇其北有石陵二』
평안도 강계부 서쪽에 강을 건너 140리에 너른 평야가 있다.
그 가운데 옛 성이 있는데, 세간에는 금나라 황제의 성이라고 한다.
성의 북쪽 7리 떨어진 곳에 비가 있고, 또 그 북쪽에 돌로 만
신묘년조 기사의 ‘來渡海’ 등 25자를 변조하였다.
1884년, 스파이 사쿠오는 131장이나 되는 능비 탁본을 가지고 일본으로 돌아왔다. 수년간 비밀리에 해독작업의 결과는 국수주의 단체의 기관지인 [회여록(會餘錄)] 제5집에 발표되었다.(1888) 이 사이 참모본부는 여러 차례 스
Ⅰ. 주제선택 동기
처음 과제를 하게 되면서 광개토 대왕에 관하여 주제를 선택한 동기는 몇 년전에 읽었던 '가즈오의 나라'라는 김진명의 소설이 생각나서 주제로 정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국사 과목을 좋아했고, 역사소설을 읽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감명깊에 읽었던 소설을 생각하면
Ⅰ 서론.
최근 일본의 독도가 자신이 땅이라 우기기에 반대하여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광고를 하는 등 여전히 독도를 둘러싸고 분쟁은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역사 왜곡은 비단 독도 문제 한 가지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자국의 치부를 가리기 위한 ‘종군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고대 한반
신묘년조 기사는 그동안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아 왔으나, 아직도 여전히 정확한 판독의 문제가 남아 있으며, 같은 판독문에서도 그 해석이 다양하다. 근자에는 原石拓本을 통한 연구가 활발하나 아직도 정확한 판독에는 의문이 많이 남아 있다. 따라서 연구의 시각을 바꾸어 비문 자체의 문장구조나 단
광개토왕릉비는 고구려 고도 국내성(國內城), 현재는 행정구역상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현(集安縣) 퉁거우(通溝)에 위치하고 있는 거석비로, 고구려의 발전에서 하나의 획기적인 계기를 열어놓은 광개토왕(제위 391~412, 39세)의 공훈을 찬양하여 세운 기념비이다. 능비는 몸돌(碑身)과 받침돌(臺石)로
Ⅰ. 서 론
최근 한ㆍ중ㆍ일 3국이 역사왜곡, 영토 문제 등으로 인해 그 대립이 극도로 달하고 있다. 한간에서는 독도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과 전쟁이 일어날 수 도 있다는 조심스런 견해를 제시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이처럼 국가간의 반론과 갈등이 제기되는 것일까? 아마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최근 한ㆍ중ㆍ일 3국이 역사왜곡, 영토 문제 등으로 인해 그 대립이 극도로 달하고 있다. 한간에서는 독도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과 전쟁이 일어날 수 도 있다는 조심스런 견해를 제시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이처럼 국가간의 반론과 갈등이 제기되는 것일까? 아마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거에 있
Ⅲ. 결론
이제껏 나는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의 논리적 허구성을 짚어 왔다. 그들이 임나일본부설에 사료적 근거로 삼았던 광개토태왕비의 신묘년 기사의 내용의 허구성과 그들이 말하는 침략의 전초기지로 서의 가야가 당시 그들의 야마토 정권과 비교 했을 때 터무니없이 강했다는 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