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고 소장본이다. 그 외 일본에 전하는 것으로 天理大가 소장한 順庵手澤本과 蓮左文庫 소장본 및 神田家 소장본이 있다. 완질이 아닌 국유의 殘本은 현재 여러 개가 전하며, 그 중에는 조선 초에 간행된 초간본도 있다. 우선 최남선이 소장했으나 지금 고려대 도서관에 보관 중인 光文會本과 渡邊勢이
문고
2만여권의 국내외 전적(典籍)과 문중의 문건 등을 소장하고 있는 국내에서도 보기 드문 문중문고(門中文庫)이다. 처음에는 소규모이던 인수문고를 1980년 초에 서고와 서사를 새로 지으면서, 명실공히 민간의 대표적인 문고로 자리 잡았다. 또한 이웃에, 도서의 열람을 위한 거경서사(居慶書舍)도
Ⅰ. 서 론
서원은 조선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정치적 지도자를 양성했던 곳으로 조선사회에 미친 영향을 매우컸다. 서원은 지역에 세워진 사립 고등교육기관으로 선례후학(先禮後學)이라는 두 가지 특별한 기능을 갖고 있다. 전자는 훌륭한 인물을 높이고 오래도록 기리고자 사당을 세워 선현에게 향
문고(晩松文庫) 소장본 『기재기이(企齋記異)』에 실려 있다. 필사본은 일본 덴리대학(天理大學) 이마니시문고(今西文庫) 소장본 『기재기이』에 실려 있다. 규장각 도서 『수성지(愁城志)』에 「수성지」와 함께 필사된 것이 있다.
위 두 작품을 통하여 인간은 이상형인 신선*선녀의 세상에 살고 싶은
문고(明谷文庫)】수장본은 필사본이다. 시음(始音)은 당나라 초의 문장가인 왕발(王勃), 양형(楊炯), 노조후(盧照後), 낙빈왕(駱賓王) 등의 시작(時作)이고, 정음(正音)은 성당(盛唐), 중당(中唐), 만당(晩唐)의 시인의 시작이며 유향(遺響)은 여러 대가의 시에 여자, 승려의 시까지 합한 것인데 시의 발췌가
이마니시(今西龍)․이유가이(鮎貝房之進)등은 국학연구전통을 이어받아 일본의 임나지배를 전제한 위에 주로 임나관계의 지명고증작업을 행하였다. 이러한 연구를 이어받아 스에마스(末松保和)는 《대일본사 大日本史》(1993)의 한편으로 <일한관계 日韓關係>를 정리하였다가,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문고(Que Sais-Je 文庫)
프랑스의 대표적인 문고본 시리즈.
표제어인 크세주는 몽테뉴의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라는 말에서 따온 것.
1941년 프레스 위니베르시테르 드 프랑스사에서 발간했으며 현재 약 3,700종류를 펴냈다.
백과전서(百科全書)의 정신에 바탕을 두고 계몽적인 내용의 글들을 담
문고(一?文庫) 필사본(43장)·경판본 1(17장)·경판본 2(22장), ‘뎐우치젼’으로 되어 있는 1914년 신문관(新文館) 발행 활자본(62면), 단국대학교 율곡도서관 나손문고(舊 金東旭 소장본) 필사본(31장)이 있다.
우리가 가장 잘 알고있는 신문관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송도에 사는 전우치라는 사람은 신기한
문고본(蓬左文庫本), 전남 해남 윤선도 종택 소장 윤씨본(尹氏本) 그리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藏書閣) 소장 장서각본 등이 그것이다. 세 이본 간 외형적 차이는 거의 찾을 수 없으나, 작품 수와 편철(編綴)된 순서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초찬 이후 수정·개찬 시기에 따라 이본 간 작품
문고[蓬左文庫]에도 1책이 있는데, 이를 영인(影印)한 것과 《속악가사(俗樂歌詞)》를 《국어국문학》 36∼38호에 영인 게재한 것이 있다.
2) 악장가사의 편찬
《악장가사》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김태준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퇴계집(退溪集)》권43 <서어부가후(書漁夫歌後)>의 기록을 근거로 퇴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