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정에서부터 신경준, 이사질을 거쳐 유희에게까지 이른다. 이러한 18세기의 국어학은 앞선 최세진의 것과는 달리 15세기의 국어학과 같이 동양 철학에 배경을 두고 있다.
2. 최세진의 『훈몽자회』(訓蒙字會)
『훈몽자회』(訓蒙字會)는 어린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치기 위한 목적으로 조선 중
최석정이 쓴 「구수략」과 홍정하가 쓴 「구일집」이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에게도 계승된 전통으로서의 수학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단적인 예라 하겠다. 비록 근대 이후, 서양의 정형화된 수학에 흡수되어 그 명맥이 상실되었지만 한국의 수학은 나름대로 체계적이고 독창적인 발전을
감사합니다!
마방진의 역사
중국 : 송(宋)나라의 《양휘산법(揚輝算法)》(1275)이 최초이다.
여기에는 3방진부터 8방진까지 취급되고 있다.
또, 명(明)나라의 정대위(程大位)가 지은 《산법통종(算法統宗)》(1593)에 3방진부터 10방진까지 실려 있다.
한국 : 조선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수학자 최석정(崔
1. 마방진(魔方陳)이란 ?
가. 마방진
수학의 전 역사를 통해 자연의 질서와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수학의 대표주자로서 많은 수학자들과 일반인들을 매료시킨 것은 마방진이었다. 마방진은 1에서 N제곱까지 모든 숫자들을 한 번씩만 사용해서 N행 N열의 배열을 만들었을 때 어떤 행이
최석정, 신경준을 손꼽을 수 있다.
- 최석정최석정은 훈민정음에 대한 연구가 한동안 침체상태에 빠져있던 시기에《경세훈민정음》을 저술하여 훈민정음과 조선어 연구에 일정하게 새로운 기운을 불러일으키는데 작용하였으며 특히 경세음수의 원리에 토대하여 훈민정음을 연구하는 상수파의 초
신경준 - 「운해」(세칭 훈민정음 운해)
명곡 최석정과 하곡 정제두에 의하여 재흥된 조선중기의 운학연구는 영조대의 여암 신경준과 이재 황윤석에 이르러 최절정에 이르렀다. 하곡 정제두는 조선 중기의 대표적 양명학자이자 포은 정몽주의 후손이기도 하다. 명곡 최석정은 당시 배척받던 양명
이귀, 김신국, 조경, 최명길, 허목, 송시열, 최석정, 이건창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들을 연대순으로 소개한다. 여기서 김인후, 김신국, 최석정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40명의 인물 대부분은 긍정적으로 평가받지만, 임사홍, 남곤, 장녹수처럼 간신이라고까지 불릴 정도로 부정적인 인물도 있다.
최석정은 그 조부가 양명학파가 아님을 역변하였고, 그의 가학은 거기서 끝나고 말았다. 이들보다 조금 앞서는 사람으로서 양명 좌파의 사상을 수용한 사람이 있다. 바로 허균이다. 그는 왕수인과 양명 좌파의 하심은, 이지 및 공안파의 신문예 운동에서 영향을 받아 이들과 통하는 점이 매우 많았다.
우리에게는 최석정, 남병길 등 많은 수학자의 역사가 있다. 다만 실용적인 데 치우치다 보니 순수 학문적 자취가 잘 보존되어 있지 않아 수학의 역사를 소홀히 해 왔다. 한국 수학은 중국 수학의 영향을 많이 받아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덮어 놓고 그것을 받아들이기만 하지는 않았다는 사
한국
수학사 下
1. 실학기의 수학 - 배경
● 새 수학의 태동
이렇듯 전쟁이 끝난 후, 우리나라의 수학은 시들시들한 상태에 있었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이전의 수학서적들이 없어짐.
그 동안의 산학 고시의 출제 범위가 초등적인 내용에 한정되고, 따라서 산사의 능력도 크게 떨어졌을 것이다.
1. 실학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