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러시아 혁명의 발발과 함께 사태는 호전되었다. 75세의 고령인 크로포트킨은 서둘러 조국으로 돌아왔다. 1917년 6월 망명한 지 40년 만에 페트로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여 열렬한 환영을 받았으며 임시정부의 교육장관직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으나 퉁명스럽게 거절했다. 19
Ⅰ. 탐구취지
무정부주의는 권력적 지배와 국가, 정부와 같은 권력기관의 존재를 부정하고, 민간의 자유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사상이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점 때문에 근대 국가에서 두드러진 진보를 보이게 된다. 또한 이는 서양의 역사에 있어 19C를 지나는 동안 마르크스주의와 대결양상을
크로포트킨의 말은 아나키즘이 자연과학의 권위에 의존해서 대자연과 인간의 본성을 규명하는 근대성의 바탕 위에 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크로포트킨이 말하는 과학이란 도구주의적인 과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주는 공포와 과중한 노동의 공포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주는 과학의 긍정
크로포트킨의 사상을 주로 하는 프랑스의 정통 아나키즘 이론 크로포트킨은 동아시아 아나키스트의 사상적 지주라고 할 수 있다.
“크로포트킨(1842~1921)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에 걸쳐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아나키즘 이론가이자 활동가이며, 국제적인 지리학자이기도 하다. 그의 사상은 ‘상
크로포트킨의 사상을 주로 하는 프랑스의 정통 아나키즘 이론 크로포트킨은 동아시아 아나키스트의 사상적 지주라고 할 수 있다.
“크로포트킨(1842~1921)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에 걸쳐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아나키즘 이론가이자 활동가이며, 국제적인 지리학자이기도 하다. 그의 사상은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