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는 개경(중앙 무대)에서 벼슬하던 귀족계급을 경족京族이라 하고 지방세력(地方土豪)을 향족鄕族이라 하였다.
조선시대는 고려때 향족과 유사한 양반계급인 사족士族들이 지방으로 분산 하여 거주 하였는데,이들을 재지사족(在地士族)이라 하였다. 향촌을 지배하던 세력이라고 하면 맞을
Ⅰ.서론
ⅰ)서울의 경화사족과 향촌사족의 문화적 격차
서울이 대도시로 발달함에 따라 서울과 향촌간의 사회적 분기는 심화 되었고, 이는 경(京)․향(鄕)간의 문화적 격차를 야기했다. 즉, 서울과 향촌이라는 지역적 개념은 더 이상 지역적 개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문화적 층위
17세기는 양반지배체제가 확립되던 시기이다. 사림정치의 개막으로 중앙에 진출하여 권력을 소유하게 된 신대사족(臣大士族)과 정계진출에 실패하여 겨우 지위만 유지하는 한미사족이 나타나게 된다. 또한 사족층 내부에서도 유력사족과 그렇지 못한 하층사족 · 이향사족은 배타적 관계에 놓여있었다
(2) 시대적 배경
-시대적 배경
19세기 초는 세도정치로 말미암아 삼정의 문란과 관료사회의 부정부패가 심했던 시기다. 경제적으로는 실학의 대두로 상업의 발달은 물론 광업, 수공업, 청과의 무역업 등으로 부의 축적으로 빈부의 차가 심해졌고 신문의 변동도 일어났다. 특히 사대부에서 閭巷人(여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