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백제를 세우고, 정치, 제도를 정비하였다. 그 후 백제의 부흥을 구호로 내걸고 영토 확장에 힘쓴 견훤은 옛 백제 땅인 전라도·충청도 일대의 비옥한 곡창 지대를 대부분 차지하여 크게 위세를 떨쳤다.
또한 신라의 왕족출신인 궁예는 귀족들의 다툼에 휘말려 지방으로 쫓겨난 자였다. 일찍이 승려가
1절 신라 하대의 사회 변동
진골귀족의 군사 정변으로 혜공왕이 시해되면서 중대가 막을 내리고 하대가 시작되었다. 태종무열왕부터 시작하여 직계 후손들이 왕위를 계승하면서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중대와 달리, 하대에는 진골 귀족들 사이에 왕위 쟁탈전이 극렬해지면서 왕권이 흔들리고 중앙 집
모든 국가가 그렇듯이 우리나라의 역사도 분단과 통일을 거듭하였다. 먼저 삼국으로 갈라졌던 나라를 신라가 통일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후삼국으로 분열되었으나 고려가 다시 이를 통일하였다. 기존의 신라에다 후백제, 태봉이란 나라로 분리되었으나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면서 이를 재통일했던 것
2. 백제 건국 신화
사실 건국 신화란 말을 붙이기 애매하다. 신화라고 부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백제의 건국 신화는 중국의 문헌에서 3건 삼국사기에서 1건을 찾을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온조의 건국만을 이야기하며 그것만의 정통성을 인정한다. 중국의 문헌에서는 온조와 함께 비류, 구태의 이야
고려 시대의 교육
1. 고려시대상황
1) 고려의 성립과 민족 재통일
(1) 통일 신라의 붕괴- 대토지 소유자의 증가로 인한 권력 의 분산과 민심의 이완
(2) 후삼국 시대의 형성 : 견훤-후백제 건국,
궁예- 후고구려 건국
=> 왕건 고려 건국(918, 송악)
※왕건- 호족을 기반으로 지방세력 통합, 중국과 외교, 친(親)
-비교 대상 텍스트
삼국유사 2권, 기이편-후백제 견훤 조
삼국사기 열전 제10권, 견훤 조
견훤은 후백제의 건국자이며 후삼국시대를 최초로 열었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900년(효공왕4년) 완산주 지금의 전주
를 점령하고 강대한 세력을 구축하게 된 후에 스스로 왕을 칭한 것은 국가체제 유지의 동력
후백제
신라
후고구려
고 려
유교
풍수지리
불 교
문벌귀족
과거제
왕 권
음서제
3
1
5
4
2
고려의 건국 배경
행정 주체 및 이념
고려 전기행정과
현대행정의 연계
행정 정책 및 관리
행정 제도
신라 말기의 모습과 후삼국 성립
고려의 후삼국 통일 과정
문벌귀족의 대두
불교ㆍ유교ㆍ풍수지리설의 조화
정
Ⅰ. 고려의 역사
9세기 말엽 신라의 사회모순이 격화되고 중앙집권력이 약화되어 전국 각지에서 호족이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했다. 호족들은 10세기 초에 이르러 견훤(甄萱)의 후백제와 궁예(弓裔)의 태봉(泰封)으로 통합되어 신라와 함께 후삼국으로 정립했다. 주로 해상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개성
후백제와 태봉사이에는 치열한 싸움이 계속되었으나, 왕건은 한동안 온건정책을 취해 한동안은 전쟁을 피하려 하였다. 견훤도 이에 호응해서 왕건의 즉위를 축하해 오고, 왕건에게 친선의 뜻을 표하였는데 이것은 물론 왕건을 회유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견훤은 고려와는 평화를 유지하고, 신라에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은 전남 광주(무진주)를 자신의 중심지로 삼으며, 한반도 곡창지대를 경제적 기반으로 하고 경상도 내륙 지방으로 전략적 방향을 돌렸다. 견훤은 무인의 기민함과 지략으로 후삼국의 한 왕으로 성장했던 것이다. 그에 비해 송악산 주변 일대를 토착기반으로 삼아 그 지역에서 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