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사] 역사편찬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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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학사] 역사편찬의 변화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들어가며
2.조선사편찬위원회
3. 조선사편수회
4.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5. 나오며
본문내용
1.들어가며
서구의 제국주의 국가가 일반적으로 경제수탈과 군사기지의 확보를 위하여 식민지를 경영하였던 것과는 달리 일제는 이에 더하여 미족말살까지 획책하였다. 한국민족말살책(韓國民族抹殺策)은 식민통치의 전기간을 통하여 계속 되었으며 한국사의 왜곡과 식민사학의 부식도 이러한 식민통치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따라서 식민사학에 관한 연구도 그 왜곡된 역사상을 비판하여 바로잡는 일과 함께 그것이 식민총치상에 기여한 측면을 밝히는 작업이 필요하다.
1960년대초 이후 본격화된 식민사학의 비판은 이후 괄목할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주로 역사왜곡의 시정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었다. 이는 식민사학의 극복이 학계의 시급한 과제였기 때문이지만, 그 결과 식민사학이 형성될 수 있었던 역사적 상황 즉 식민지배상황과의 연관문제는 소홀히 취급될 수 밖에 없었다.
조선사편수회는 1925년 조선 총독부에 의해 설치되었으며 여기서 편찬한 는 종래의 식민사학을 결집한 것이었다. 일제는 를 통하여 식민사학을 체계화하는 한편 이후의 식민사학의 발전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식민사학의 식민통치상의 기능을 밝히는 데 총독부가 설치한 조선사편수회에 관한 연구가 요구된다.

2.조선사편찬위원회
조선사편찬위원회의 설치는 1921년에 이미 제등실총독의 발의로 계획되었다. . 1922년 12월 6일
이때 계획된 는 1921~26년의 3년간에 걸쳐 완성할 예정이었으며 이를 통하여 한국사외에 대한 관습조사도 겸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최초의 계획안은 흑판승이, 내등호차랑등 일본사학자들과의 실무적인 협의과정에서 수정 ․ 변경되었다. 즉 사업년한을 10년으로 늘리고 부위원장제를 폐지하였으며 도 사회조사의 성격을 축소하여 전문사서로서의 성격을 강화하였다.
이에 따라 1922년 12월 4일 이 확정 발포되었으며 의 편찬은 총독부의 산하기관인 조선사편찬위원회에서 관장하게 되었다.
편찬위원회는 총독부의 훈령에 따라 설치된 사서편찬을 전담하는 특별기구이었으나 중추원 내에 설치됨으로써 사서편찬에 관한 업무가 제도적으로 중추원과 분리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선임된 직원들도 중추원 촉탁의 자격으로 편찬위원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처럼 편찬위원회가 중추원 내에 설치된 것은 중추원이 구한국 때의 전직관리들로 구성되어 있어 한국사에 관한 지식이 풍부한 한국인을 이용
참고문헌
1. 김성민,「朝鮮史編修會의 組織과 運用」, 국민대 대학원, 1993
2. 국사편찬위원회 , http://kuksa,nhcc.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