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암 수호전 11회 12회 한문 및 한글번역

 1  시내암 수호전 11회 12회 한문 및 한글번역-1
 2  시내암 수호전 11회 12회 한문 및 한글번역-2
 3  시내암 수호전 11회 12회 한문 및 한글번역-3
 4  시내암 수호전 11회 12회 한문 및 한글번역-4
 5  시내암 수호전 11회 12회 한문 및 한글번역-5
 6  시내암 수호전 11회 12회 한문 및 한글번역-6
 7  시내암 수호전 11회 12회 한문 및 한글번역-7
 8  시내암 수호전 11회 12회 한문 및 한글번역-8
 9  시내암 수호전 11회 12회 한문 및 한글번역-9
 10  시내암 수호전 11회 12회 한문 및 한글번역-10
 11  시내암 수호전 11회 12회 한문 및 한글번역-11
 12  시내암 수호전 11회 12회 한문 및 한글번역-12
 13  시내암 수호전 11회 12회 한문 및 한글번역-13
 14  시내암 수호전 11회 12회 한문 및 한글번역-14
 15  시내암 수호전 11회 12회 한문 및 한글번역-15
 16  시내암 수호전 11회 12회 한문 및 한글번역-16
 17  시내암 수호전 11회 12회 한문 및 한글번역-17
 18  시내암 수호전 11회 12회 한문 및 한글번역-18
 19  시내암 수호전 11회 12회 한문 및 한글번역-19
 20  시내암 수호전 11회 12회 한문 및 한글번역-20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시내암 수호전 11회 12회 한문 및 한글번역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第十一回 梁山泊林衝落草 ?京城楊志賣刀
제십일회 양산박임충락초 변경성양지매도
第十二回 ?面獸北京鬪武 急先鋒東郭爭功
제십이회 청면수북경투무 급선봉동곽쟁공
본문내용
話說林衝打一看時, 只見那漢子頭戴一頂范陽氈笠, 上撒着一把紅纓;
화설임충타일간시 지견나한자두대일정범양전립 상살착일파홍영
范陽:현재의 허베이성 줘셴[?縣]에 해당된다. 역사상 유명한 것은 유주(幽州:베이징)를 중심으로 한 범양번진이다. 713년 설치되어, 936년 연운16주(燕雲十六州)의 일부로서 요(遼)나라에게 할양될 때까지 약 2세기 동안, 인접한 성덕(成德) ·천웅(天雄)의 두 번진과 더불어 허베이삼진[河北三鎭]이라 불리며, 당나라에 대하여 줄곧 원심적(遠心的) 태도를 취하였다. 이 때문에 안녹산(安祿山) ·사사명(史思明)도 이 곳을 거점으로 하여 난을 일으켰다. (두산백과)
氈笠:조선 시대, 병자호란 이후로 무관이나 병사들이 쓰는 전투형 모자를 이르던 말. 운두가 높고 둘레가 평평하며 둥글다. 흔히 붉은 돼지털로 둘레에 끈을 꼬아 두름
撒(뿌릴, 놓다 살; ?-총15획; sa?,sa?)
각설하고 임충은 한번 보니 단지 사내 머리에 한 범양의 모전 삿갓을 쓰고 위에 한개 홍색 갓끈을 놓았다.
穿一領白緞子征衫, 繫一條縱線?;
천일령백단자정삼 계일조종선조
zh?ng sh?n ?? ?? 征衫:旅人之衣
?(끈 조; ?-총16획; ta?o)
한 벌 백색 비단 정삼을 입고 한 줄기 세로실 끈을 매었다.
下面?白間道行纏, ?着?子口, 獐皮襪, 帶毛牛膀靴;
하면청백간도행전 조착고자구 장피멸 대모우방화
行纏 : 바지나 고의를 입을 때 정강이에 감아 무릎 아래 매는 물건
?(긁을, 집다, 움켜쥐다 조; ?-총7획; zhua?)
?子 [k??zi] :바지
아래에 청색과 백색이 섞인 행전을 매고 바지를 움켜쥐고 노루가죽 양말을 신고 털소 엉덩이 가죽신을 신었다.
跨口腰刀, 提條朴刀;
과구요도 제조박도
그는 요도를 차고 박도를 들었다.
生得七尺五六身材, 面皮上老大一搭?記, ?邊微露些少赤鬚;
생득칠척오육신재 면피상노대일탑청기 시변미로사소적수
身材 [sh?nc?i] :1) 체격 2) 몸집 3) 몸매
?? [q?ngj?] :1) 어혈 2) 몽골반 3) 축혈
老大 [l?od?] :1) 맏이 2) 늙다 3) 연로하다
그가 타고나길 7척 5,6의 몸으로 얼굴은 오래된 어혈이 있고 뺨 주변에 약간의 적색 수염이 노출되어 있었다.
把氈笠子?在脊梁上, 坦開胸脯;
파전립자흔재척량상 탄개흉포
脊梁 [j??liang] :1) 등 2) 중추 3) 의지·담량
胸脯 [xi?ngp?(r)] :1) 가슴 2) 흉부
그는 전립을 등에 두고 가슴을 폈다.
帶着?角兒軟頭巾, 挺手中朴刀, 高聲喝道:「?那潑賊!將俺行李財帛那裏去了。」
대착조각아연두건 정수중박도 고성갈도 니나발적 장엄행리재백나리거료
zhu? ji?o ??? ???ˇ ?角:??巾???成角?
연한 두건을 뿔을 세우고 손의 박도를 들고 큰 소리로 일갈했다. “너 저런 발칙한 도적아! 내 보따리와 재물 어디에 있는가?”
林衝正沒好氣, 那裏答應, ?圓怪眼, 倒?虎鬚, 挺着朴刀, ?將來, ?那個大漢。
임충정몰호기 나리답응 정원괴안 도수호수 정착박도 창장래 투나개대한
倒?: 모양이 거꾸로 된 것
임충이 바로 좋은 기가 없고 저렇게 응답함에 둥글게 눈뜬 괴이한 눈에 호랑이 수염이 거꾸로 되어 박도를 가지고 쳐 오니 대한과 싸웠다.
此時殘雪初晴, 薄雲方散。
차시잔설초청 박운방산
이 때 남은 눈이 처음 맑고 엷은 구름이 모두 흩어졌다.
溪邊踏一片寒?, 岸畔湧兩條殺氣。
계변답일편한빙 안반용양조살기
시내주변에 한 조각 찬 얼음을 밟고 강가주변에 두 살기가 용솟음쳤다.
一往一來, ?到三十來合, 不分勝敗。
일왕일래 투도삼십래합 불분승패
한번 왕래하여 30여합을 싸우며 승패가 구분되지 않았다.
兩個又?了十數合。
양개우투료십수합
두명이 십수합을 또 싸웠다.
正?到分際, 只見山高處叫道:「兩位好漢, 不要?了。」
정투도분제 지견산고처규도 양위호한 불요투료
分? [f?nj?] :1) 한계 2) 한도 3) 신분
바로 싸움이 한계에 이르러서 단지 산높이에서 소리침을 보았다. “두분 호걸이여, 싸우지 마시오.”
林衝聽得, 驀地跳出圈子外來。
임충청득 맥지도출권자외래
圈子 [qu?n?zi] :1) 원 2) 테두리 3) 동그라미
임충이 듣고 갑자기 테두리 밖으로 뛰어 나갔다.
兩個收住手中朴刀, 看那山頂上時, 却是白衣秀士王倫和杜遷, 宋萬, ?許多小??。
양개수주수중박도 간나산정상시 각시백의수사왕륜화두천 송만 병허다소루라
收住 :止住멈추다. 억제하다
두명은 손안에 박도를 거두고 산 정상을 볼 때 백의수사인 왕륜과 두천, 송만과 허다한 졸개들이었다.
走下山來, 將船渡過了河, 說道:「兩位好漢, 端的好兩口朴刀!神出鬼沒!這個是俺的兄弟豹子頭林衝。?面漢, ?却是誰?願通姓名。」
주하산래 장선도과료하 설도 양위호한 단적호양구박도 신출귀몰 저개시엄적형제표자두임충 청면한 니각시수 원통성명
산아래로 내려가서 배로 강을 건너서 설명했다. “두분 호걸이여 단적으로 좋은 두 개 박도로 싸우며 신출귀몰하십니다! 이분은 제 형제 표자두 임충입니다. 청색 얼굴 사내시여 당신은 누구시오? 통성명이나 하길 원합니다.”
那漢道:「?家是三代將門之後, 五侯楊令公之孫, 姓楊, 名志。流落在此關西。年紀小時, 曾應過武擧, 做到殿司制使官。道君因蓋萬歲山, 差一般十個制使去太湖邊搬運『花石綱』赴京交納。不想?家時乖運蹇, 押着那花石綱, 來到黃河裏, 遭風打?了船, 失陷了花石綱, 不能回京走任, 逃去他處避難。如今赦了俺們罪犯。?家今來收的一擔兒錢物, 待回東京去樞密院使用, 再理會本身的勾當。打從這裏經過, 雇請莊家挑那擔兒, 不想被?們奪了。可把來還?家, 如何?」
나한도 쇄가시삼대장문지후 오후양령공지손 성양 명지 유락재차관서 년기소시 증응과무거 주도전사제사관 도군인개만세산 차일반십개제사거태호변반운 화석강 부경교납 불상쇄가시괴운건 압착나화석강 래도황하리 조풍타번료선 실함료화석강 불능회경주임 도거타처피난 여금사료엄문죄범 쇄가금래수적일담아전물 대회동경거추밀원사용 재이회본신적구당 타종저리경과 고청장가도나담아 불상피니문탈료 가파래환쇄가 여하
참고문헌
십대고전백화장편소설총서중 수호전, 상해고적출판사, 명나라 시내암, 페이지 92-103
하고 싶은 말
시내암 수호전 11회 12회 한문 및 한글번역 북송 말인 선화(宣和) 연간, 송강 이하 108명의 호걸들로 회집된 군도(群盜)가 산둥의 양산박을 근거지로 관(官)과 맞서는 이야기이다. 108명의 전력(前歷)은 하급관리·무관·시골 학자·농어민·상인·도박꾼·도둑 등 복잡하고 다양하며, 이들은 각각 정정당당한, 또는 불령(不逞)한 여러 가지 혐의 때문에 속속 양산박에 흘러들어왔다. 수호전의 후반은 양산박을 진압 못한 조정의 귀순책에 속아서 관군으로 둔갑, 북방의 요를 치고, 다시 강남의 방랍(方臘)의 난을 평정하다가 전사·이산되고 그중 남은 사람들은 탐관오리에게 독살당하거나 체념하고 잠적하는 비극으로 끝난다.
송강의 난은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며 《송사》 등 기타에 약간의 기록이 있으나, 전설화되어 남송·원의 2대를 통해서 강담이나 연극의 재료가 되었다. 그 단계를 볼 수 있는 사료나 작품이 얼마간 전해지는데 그중에서 《대송선화유사》(大宋宣和遺事) 전후 2집이 가장 주목할 만하다. 강석(講釋) 대본식의 전기적(前期的) 역사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북송 멸망 전후의 애사(哀史)를 엮은 속에 '송강 36인'의 모반의 전말이 이미 한 편의 결말을 예상할 수 있는 형태로 삽입되어 있다. 이와 같은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명나라 초에(1400년 전후), 시내암의 손으로 독본소설로 꾸며져서 처음에는 사본으로 유포되었다고 추정되는데, 다시 정리되어 가정 연간(1522-1566)에 <충의수호전>(忠義水滸傳) 100회의 간행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