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조선 사회주의체제 성립사 1945~196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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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북조선 사회주의체제 성립사 1945~1961(1,2)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북조선 사회주의체제 성립사 : 1945-1961
① 강독한 저작의 주요 내용 및 논지 요약
제1장 해방과 인민위원회(1945 ∼ 1946)
1. 인민위원회와 조선공산당북조선분국
1) 분할점령과 공산당의 남북분립 :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항복이 가져 온 조선 권력의 공백상태는 밑으로부터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자치조직에 의해 채워져 갔는데, 특히 중앙에서 결성된 건국준비위원회는 이후 조선인민공화국으로 개편된다. 미소 양군이 진주하게 되면서 남북조선의 정치지형은 양군의 점령정책 규정에 영향을 받아 크게 변해 가게 되는데, 당시 소련은 좌우세력의 균형에 의거하여 밑으로부터 조선인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형태로 점령정책을 실시했다. 그 과정에서 평양이 소련 점령정책을 실현시키는데 있어서 행정중심의 역할을 하게 되었고, 이는 서울이라는 전 조선의 전통적인 정치적 중심으로부터 행정적 기능이 분리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소련은 점령 초기 소련에 우호적인 북조선만의 정권적 조직을 형성하려 했는데, 이렇게 북조선 지역에 정권의 기초를 만든다는 정책이 결정되자 북조선 지역에 독자의 당 조직을 형성시키기 위한 여건 조성이 소련군의 가장 중요한 당면정책이 된다. 이후 이러한 공산당의 남북분립은 중국공산당 밑에서 ‘조선공작단’을 만들어 귀국한 김일성 등 빨치산 그룹이 주도적으로 추진하게 되는데, 이들은 서북5도당책임자 및 열성자대회에서 국내계 공산주의자들과 갈등이 빚어지기는 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조선공산당 북부조선분국이 공식적으로 결성되며, 공산주의자의 지역적 분립이 시작된다.
2) 인민위원회와 사회단체의 남북분립 : 북조선 5도인민위원회 연합회의 이후 치스차코프는 북한에 중앙화된 권력기관의 창설을 제안했으며, 이는 ‘좀 더 느슨한 형태’로서 실현되게 된다. 공식적으로 북조선의 각 도 인민위원회와 소련군사령부 민정부와의 교섭을 통해 북조선 5도행정국이 발족하게 된다.(이후 북조선 5도행정국은 북조선에서 중앙집권적 정부 수립의 모체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전국인민위원회대표자회의에서 분국의 위치는 아직 북조선 전 지역을 장악하고 있지 못한 상태로, 단지 인민공화국으로부터 북조선 지역의 인민위원회를 분리시키는 것에 대해서만 일정한 성과를 거두게 된다.
3) 분국 제3차 확대집행위원회 : 1945년 12월 북조선에 이미 도착한 만주파, 강화된 소련계, 새로이 참가한 연안계가 기존의 국내계에 대항하여 김일성의 강력한 후원세력으로 등장한다. 특히 11월 중순 발생한 신의주사건 이후 김일성은 제3차 확대집행위원회에서 책임비서로 선출되며 당권을 쥐게 되는데, 이는 당시 북조선 정세의 변화에 대한 대응이었다. 그러나 당시 분국은 하부 당 조직이 분국의 지시를 무시하거나 실행하지 않는 등 지방당조직의 자율성이 강한 상태로, 분국의 통합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 상태였다. 바로 이때 개최된 분국 제3차 확대집행위원회는 이러한 당내 상황을 근본적으로 전환하고, 김일성을 중심으로 소련계와 연안계가 분국의 조직부분을 장악해 가기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 이 대회에서 김일성의 보고는 종래의 노선을 현상 유지하는 선을 넘지 않으면서, 북조선 지역에 관심을 한정하여 분국의 강화에 최대 역점을 둠으로써 북조선 지역의 통일전선 결성에 주력한다는 방침을 보여주었다.
4) 보론(조선공산당북조선분국 창설에 관하여) : 10월 10일은 조선로동당의 공식적인 창립일로, 북한에서는 김일성, 김정일의 탄생일 다음가는 큰 명절이자, 9월 9일의 정부 수립일보다도 의미가 큰 기념일이다. 그러나 창립기념일로 10월 10일이 정식으로 확정된 것은 1958년으로, 조직명칭과 창설 날짜가 확정되기까지 복잡다단한 과정은 조선로동당 역사에서 해방 이후 재건된 서울의 조선공산당, 그 맥을 잇는 남조선로동당이 부정되어 가는 과정이 되었다.
2. 초기의 산업관리체제
1) 인민위원회와 공장위원회 : 해방직후 공업지대의 공장운영은 소련군뿐만 아니라, 각 지역 인민위원회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로, 북조선 점령 후 소련군은 이미 조직되어 있던 각 도 인민위원회에 통치권을 맡기게 된다. 좌익세력이 강하던 인민위원회에는 노동자의 대표가 포함되어 있었던 만큼, 인민위원회와 공장관리위원회는 인적, 조직적 결합을 통한 협조관계에 있었다. 즉, 전반적으로 기업이나 공장 운영은 조선인 종업원의 자치조직이 수행하고 있었으나, 대규모 중공업 기업은 소련군이 운영에 개입하여 김독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2) 노동조합과 직업동맹 : 해방 후 전국 각지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인민위원회나 공산당 조직과 함께 노동조합도 결성되어 갔다. 지방 노동조합의 결성은 각 지역 공산당 조직과의 밀접한 관계 아래 진행되었고 일제하 적색노동조합운동이 강했던 곳에서 활발하였다. 1945년 11월 서울에서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이하 ‘전평’)가 결성되었는데. 당시 전평은 서울 조선공산당중앙의 영향 아래 있었다. 이어서 11월 말 평양에서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북조선총국’결성대회가 열리는데, ‘분국’이 ‘총국’으로 변한 것은 북조선의 독자성을 더 강조한 표현일 것이다. 이와는 별도로 인텔리, 사무원들을 ‘직업동맹’이라는 조직적 틀로 뭉뚱그리려는 시도도 이루어졌다.
3. 초기의 지방인민위원회와 농민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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