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조 소악부(익제 이제현의 소악부, 급암 민사평의 소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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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조 소악부(익제 이제현의 소악부, 급암 민사평의 소악부)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고려조 소악부
< 차 례 >
Ⅰ 서론
Ⅱ 본론
1. 익제 이제현의 소악부
1) 이제현의 문학관
2) 이제현의 작품
2. 급암 민사평의 소악부
1) 민사평의 작품
3. 소악부 제작
4. 소악부의 형식
5. 문학사적 의의와 한계
Ⅲ 결론
Ⅰ 서론
소악부는 당시 유행하던 우리말 노래를 칠언절구의 한시로 옮겨놓은 것을 뜻한다. 문자로 기록한 민간의 노래를 악부라고 하는 중국의 용어를 가져다 썼으며, 칠언절구의 짧은 형식을 사용했으므로 소악부라고 했다. 이제현의 소악부는 『익재난고』 권 4에 11편이 전하고, 민사평의 것은 『급암선생시고』 3권에 6편이 전한다.
Ⅱ 본론
1. 익제 이제현의 소악부
1) 이제현의 문학관
① 교화 수단으로서의 문학
익재가 살았던 시대는 원이 내정을 간섭하고, 무신정권 이후 새로 등장한 권문세족이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폭정을 일삼던 혼란의 시기였다. 따라서 대외적으로는 국가 자주권을 회복하고, 대내적으로는 권문세족에 맞서 국정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과 이념의 정립이 절실히 요구되던 때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익재는 나라를 바로잡기 위한 방법으로 문교정책을 내세웠다. 당시는 성리학이 주류를 이루던 시기였는데, 익재의 문학관도 이에 영향을 받아 文의 형식보다는 그 뜻을 중시하였다. 나아가 문의 효용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문을 교화 수단으로 보는 견해는 『시경』의 기록에서 볼 수 있다.
공자께서는 이 때에 태어나시어…… 선이 족이 법이 될 수 없는 것과 악이 족히 경계가 될 수 없는 것은 또한 삭제하여 제거해서 간략함을 따라 구원(久遠)함을 보여 주어서, 배우는 자로 하여금 이것을 가지고 그 특실을 상고하여 선한 것을 본받고 악한 것을 고치게 하셨다. 이 때문에 그 정사가 비록 한 시대에 행해지지는 못하였으나, 그 가르침은 실로 만세에 입혀졌으니 이것은 시의 가르침이 됨이 이러한 것이다. 『시경』「詩經集傳序」
孔子生於其時…… 而其善之不足以爲法 惡之不足以爲戒者 則亦簡而去之 示久遠 使夫學者 旣是而有以考其得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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