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항주,소주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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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기행문 항주,소주 여행기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방학동안 나 자신에게 제일 뜻 깊었던 시간이 무엇이라고 묻는다면 나는 지체 없이 이번 杭州,州여행이었다고 말한다. 겨울방학동안 공부는 다 마스터해야겠다는 의지만 가진 체 정작 얻었던 건 별로 없었는데 여행 간다는 생각에는 의지가 듬뿍 담겨져 있었던 건 그만큼 공부보다는 여행에 더 정이 갔었다. 이번에 내가 쓸 여행기는 중국 사람들의 생활상, 식습관 등등 여러 가지 방면으로 내가 보았던 것들을 모아보았고, 중국역사에 대해서도 유적지탐방을 통한 역사의 재해석을 해보았던 일들을 모아서 쓰는 것이다.
州를 간다는 생각에 나는 잠을 설쳤다. 중국에 와서도 계속 되뇌었던 여행을 이제야 간다는 게 실감이 안난것이다. 아침이 되자 서둘러짐을 싸고 학교 밖으로 나왔다. 근데 이게 웬걸 비가 오는 것이 아닌가! 부푼 기대가 조금은 시들어버렸지만 어쨌든 출발을 했다. 州역에 도착하니 때마침 阿姨가 있어서 금방 숙소를 잡을 수 있었다. 숙소를 잡은 자리 바로 맞은편에 子林이 있어서 이곳을 이번 여행의 첫 발자취로 삼았다. 첫날의 시작이었던 子林은 원내에 있는 기암괴석이 사자를 닮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으로, 元代당시 명승이 지었다고 전해진다. 元代에 지었다는데 그 보존상태가 준수해서 놀랐다. 그리고 크기가 州의 4대정원중 제일 규모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원내의 假山이 산길, 동굴에 조화되어 미로처럼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곳은 기암괴석들이 쫙 좌우로 펼쳐져있는것에 사람들이 놀라는데 나도 직접 보고나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다음 코스로 州博物을 가게 되었다. 博物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이보다 좋은 여행코스는 없다면서 잔뜩 부푼 기대로 가게 되었다. 근데 역시나 시설 면에서나 안에 전시되어있는 유물이나 왔다는 걸 잘했다는 느낌이 들어서 더 자세하게 보게 되었다. 선사시대부터 시작해서 춘추, 오대등등 여러 시대의 유물을 볼 수 있어서 뜻 깊었다. 또 바로 출구 에는 태평천국 충왕이었다는 이수성의 왕부도 있어서 태평천국의 난을 다시 되짚어 볼 수도 있다. 그 옆에는 拙政이 있는데 그 크기부터 압도적이다. 拙政은 元代에는 절로 쓰였다가 明代에 와서야 어사王獻臣이개인정원으로 탈바꿈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이곳은 또한 꽃이 많아 좋은 풍경을 연출하는데 마침 내가 갔을 때는 비가 오는 겨울 이어서 안타깝게도 볼 수 없었다. 또한 동이 나누어져 있어서 각각의 동을 구경하는 것도 여행 포인트중 하나다.
다음날 여정은 留이었다. 여기도 아기자기한 기암괴석들을 구경할수 있는데 그중 化石, 冠雲峰을 꼽을 수 있다. 특히 冠雲峰은 그 높이가 6.5m나 되며 태호석이면서도 자연산이어서 더 믿기지 않고 태호석특유의 특징들이 잘 나타나있어 그 명성을 더 돋보여준다. 留은 졸정원에 비해 규모는 적지만 정교한 건축설계와 배치로 유명하다고 한다. 溜으로 들어오면 주건물인 寒碧山莊을 중심으로 앞쪽의 연못과 연못을 둘러싼 假山이 있어 州정원의 거의 모든 요소를 갖추었다고 한다. 州旅行의 마지막여행지였던 虎丘는 내가 이번 여행을 계획했던 중점적인 요인 중의 하나였다. 바로 역사여행이라는 것인데 언제 중국에 다시 와서 여행을 해볼수 있겠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제일 중점적으로 고려해보았던 바로 그곳이기도 했다. 虎丘는 작은 언덕산에 자리잡고 있으며 이곳에 2500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어 州의 살아있는 전설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서 눈에 띄는곳은 바로 池로 오왕 합려의 무덤이라고 한다. 이곳이 池인 이유는 합려가 검을 엄청 좋아했다는데 가지고 있었다는 검이 3000개나 되었다고 한다. 합려가 죽은뒤 그 검들을 같이 묻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池의 옆쪽벽면에 쓰여있는 池는 晋代의 위대한 서예가였던 왕희지가 쓴 글씨라 한다. 시검석도 볼만한 유적중 하나로 합려가 간장을 시켜 명검을 만들어오게 하여 명검을 시험하기 위해 바위를 갈랐다는 전설이 있는 곳으로 진짜로 바위의 중앙에 칼로 깊게 벤 듯이 선명한 칼자국이 있어서 신기하다. 虎丘의 위쪽으로는 雲岩寺塔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탑은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져있는것이 특징으로 더 놀라운건 피사의 사탑보다 100년이나 더 오래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탑신에 새겨진 수십개의 모란꽃무늬는 수백년의 세월을 넘어 오늘날까지도 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어 더 감탄하게 된다.
州는 역사적인 도시로, 일찍이 春秋戰國時代에 吳나라의 國都로 발전하였고, 그 뒤 역대에 걸쳐 주변 지역의 행정 중심지로 중시되어 왔다. 隋나라 때 대운하가 개통되자 江南米의 수송지로 활기를 띠면서 杭州와 더불어 天上天堂 地下蘇杭이라고 불릴 정도로 번영하였다. 上海가 개항하기 전까지는 吳淞江의 수운을 이용한 외국무역도 활발하였다. 전통적인 견직물·자수제품이 유명하였고, 明나라 이후부터 면포의 생산도 많아졌다. 역사적으로 州는 地主문화가 발달된 곳으로 인식되었으며 관직에서 물러난 관료들의 쑤저우의 문화를 만들어 내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방적·기계·제강·화학·시멘트 등 근대공업도 발달하였다. 주변지역의 풍부한 농업생산과 대운하·우쑹강·후닝 철도[?寧鐵道:上海∼南京] 등 편리한 수륙교통에 힙입어 전통적인 상업활동도 활발하다. 시가지는 둘레 23km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옛 성 안쪽과 그 바깥의 신시가지로 나뉘는데 시내에 運河網이 발달되어 물의 도시로 불린다. 옛 관료·지주들이 꾸민 정원들이 많아 정원의 도시라고도 부르는데, 4대 名園으로 꼽히는 滄浪亭· 獅子林· 拙政園· 留園 외에 寒山寺 등 명승고적이 많다.
이번 州여행은 참 재밌었고 보람 있던 여행이었었다. 손자병법을 읽으면서 알게 된 오왕합려, 부차부자와 월왕 구천과의 전쟁, 오월동주로 이어지는 숨 막히는 상태, 와신상담 끝에 결국에는 월왕 구천이 이기게 된다는 중국역사가 내 눈 앞에서 보이고 있다는 것에 꿈만 같았고 좋았다. 이렇게 여행을 가서 뭔가 획득하고 온다는 느낌은 처음엔 걸으면서 힘들고 고난을 느끼는 여행이었더라도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서 더욱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활력소와 같은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이번엔 날씨가 그리 좋지 않아서 비가 와서 우산을 쓰는 힘든 일이 있었어도 앞의 그런 느낌들을 받아서 더 편했던 거 같다.
州에서의 일정을 끝낸 다음 바로 杭州로 출발을 했다. 杭州로 도착해보니깐 州와 다르게 사람이 엄청 많아서 어지러웠다. 杭州숙소는 여행오기전에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을 해놓아서 쉽게 다닐 수 있었다. 여러모로 이 더 좋은게 단가로 구비되어있을건 다 있는 상태로 정리되어있어서 굳이 비싼 곳 잡을 필요가 없다는 게 좋은 장점이다. 처음 여정으로 杭州오면 꼭 들려야하는 西湖로 잡았다. 西湖란 어딘가? 중국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호수로 손꼽히는 곳이며 호수위에 있는 연꽃, 등등 꽃들이 수를 놓아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는 그 호수 아닌가! 근데 내가 갔던 때는 겨울...... 꽃들은 이미 시들어 없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겨져있고 연꽃은 잎들만 둥둥떠있는 풍경만 바라보게 되었다. 실망을 하였지만 어쩔수 없이 호수중간에 있는 고산을 따라 나있는 길을 걷게 되었다. 날씨도 우중충 하였지만 각 다리마다 있는 이름과 그 이야기들을 보게 되자 역시 西湖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雪을 지나 고산에 도착해서 浙江省博物을 참관해서 흙으로 빚은 토우들, 청대 유적들을 보았다. 그 다음 岳을 했다. 岳飛는 우리나라의 이순신에 비견할만한 중국의 충신으로 떠받들여지고 있는 중국의 민족영웅이다. 岳飛는 남송시대 사람으로 금나라의 침입에 대항해 혁혁한 공을 세웠으나 그의 반대세력인 진회의 모함으로 사형을 받은 비운한 장수이다. 그에 모함했던 진회는 간신으로 기록되어 岳 한편에 방치돼 오욕의 삶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역사가 분명히 말해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西湖길을 쭉 걸어가다오면 나오는 곳이 雷峰塔이다. 이곳은 10세기경 越의 국왕이 황씨에게서 득남한것을 경축하기위해 세웠다고 하여 黃妃塔이라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지금은 다시 재건해서 시설이 괜찮아 졌는데 과거 20세기초 무너졌다고 한다. 2002년에 새로 세운 탑이 지금 볼 수 있는 탑이다. 黃妃塔의 잔해는 새로지은곳 1층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특히 여기는 중국고대 민간설화인 백사전의 주요 무대이기도 하며, 백사전의 유래를 보면 눈물이 날 만큼 슬픈 이야기 이니 보는 것도 좋은 경험중 하나이다. 그 다음날 나는 靈隱寺, 峰을 갔다. 두 곳은 가까이 위치해 있으며 16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불교신자인 사람들은 이곳에 많이 오고간다고 하며 신기한 것은 한국스님이 중국에 있는 절에 모셔져있다는것도 또다른 하나의 볼거리다. 峰은 석굴 군이며 바위 중간 중간에 있는 조각들이 많은 사람들의 상상을 자극한다. 구경을 하는 와중에 쉬는 시간으로 항주에서 유명하다는 井茶를 먹으러 갔다. 어디를 갈지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어떤 阿姨가 다가와서 따라오라는게 아닌가, 그래서 의심을 했는데 알고보니 차를 팔려고 나온 행상인 이어서 그 집으로 따라가서 차를 먹게되었다. 먹어보았는데 다른 차와는 다르게 깨끗한 감이 없지 않아 있어서 몸에 좋다는 느낌으로 시음했다. 井茶를 시음한 다음에 玉皇云에 가게 되었다. 여기는 八卦田이 있는곳으로 주역의 팔괘를 본떠서 밭을 만들었다는 곳이다. 보면 규격이 딱 맞아서 놀라게 된다.
杭州는 錢塘江의 하구에 위치하며, 서쪽 교외에 西湖를 끼고 있어 蘇州와 함께 아름다운 고장으로 알려졌다. 7세기 隋나라가 건설한 江南河의 종점으로 도시가 열려 南宋시대에는 수도가 되었으나, 임시수도라는 뜻에서 行在라고 하다가 臨安이라고 개칭하였다. 10세기 이후에는 외국선박의 출입도 많았고, 元代에는 M.폴로, 이븐 바투타 등이 이곳을 방문하여 행재의 와전인 킨자이(Khinzai), 칸자이(Khanzai) 등의 명칭으로 유럽에 소개되었다.19세기에 太平天國軍의 싸움으로 파괴되었고, 南京條約에 의해 上海가 개항되자 항구로서 번영은 상하이에 빼앗겼다. 오늘날 성도로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綠茶의 최고급품으로 알려진 龍井茶의 산지이며, 전통적인 직물공업을 바탕으로 근대적 설비에 의한 絹 ·면직포 ·염색 등의 공업이 발달하였다. 교외의 새로운 공업지대에는 1957년에 철강공장이 세워져 공작기계 ·동력기계 ·보일러 ·베어링 ·전선 관련공장이 들어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