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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곤명(昆明)에서의 삼일춘몽(三日春夢)
홍을표  강원사학회, 강원사학 [2015] 제27권 187~209페이지(총23페이지)
후기구석기시대 흑요석 좀돌날의 갈린 자국 연구
최승엽 ( Seung Yup Choi )  강원사학회, 강원사학 [2014] 제26권 1~19페이지(총19페이지)
철원 장흥리와 양구 상무룡리, 광주 삼리 유적에서 출토된 흑요석 좀돌날가운데, 한쪽 가장자리가 매우 곱게 갈린 면을 지닌 것들이 확인되었다. 갈린 흑요석 좀돌날의 특징은 한쪽 가장자리가 날인 반면, 그 반대편 가장자리는 등면과 배면 사이에 매우 좁은 면(面)이 존재한다는 점, 그 면을 타격면으로 하여 좀돌날의 등 부분에 정교하고 가파르게 잔손질이 이루어져 있다는 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면을 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미세하게갈린 흔적이 발견된다는 점, 남겨진 제작흔으로 볼 때, 갈린 시점이 잔손질보다 선행했다는 점 등이다. 또한 철원 장흥리와 양구 상무룡리에서 출토된 좀돌날몸돌 중에 배면이 갈려있는 것이 존재한다는 점은 매우 주목된다. 좀돌날의 갈린 흔적은 기존에 이루어진 사용흔 분석 결과와 비교할 때 매우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글에서...
TAG 흑요석, 좀돌날, 갈린 자국, 기술, 상무룡리 유적, 장흥리 유적, obsidian, microblade, ground marks, technology, Sangmuryong-ri site, Jangheung-ri site
임진왜란(壬辰倭亂) 직전 전쟁정보(戰爭情報)와 조선의 대응(對應)
윤경하 ( Kyoung Ha Yoon )  강원사학회, 강원사학 [2014] 제26권 21~45페이지(총25페이지)
조선의 공식적인 외교사절이었던 通信使와 일본의 공식적인 외교사절이었던 國王使를 통하여 조일양국은 상대국에 대한 정확한 정보수집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 조선은 對일본 정보수집에 있어서 한계성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1443년 통신사행을 마지막으로 1590년 통신사행까지 일본 京都에 이르지 못하는 150여 년간의 일본에 대한 정보공백시기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또한 왜관과 대마도를 통한 제한적인 정보는 정치·경제적 목적 및 이해관계에 따라 왜곡되어 졌고, 조선조정에서는 정보의 왜곡과 진위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정보공백시기를 지내오면서 조선을 향한 일본의 직접적인 공격위협에도 불구하고 위기인식의 혼선을 가져왔다. 당시 동아시아 국제질서 속에 편입되어 있던 조선은 1590년 통신사행과 이후 일본의 직접적인 위협에 대해 사신을 통...
TAG 임진왜란, 전쟁정보, 조선통신사, 조선침략, 가도입명, 정명향도, 풍신수길, 대일본인식, The Imjin war, Warfare information, Joseon Tongsinsa, Invasion on Joseon, Gado-ibmyeong, Jeongmyeong-hyangdo, Toyotomi Hideyosi, Awareness on Japan
양구 지역 성씨와 세거씨족에 관한 연구
고민정 ( Min Jung Ko )  강원사학회, 강원사학 [2014] 제26권 47~65페이지(총19페이지)
본고는 양구 지역을 대상으로 그 성씨의 분포와 세거씨족의 존재 양상을 밝힘으로써 전통기 양구 지역의 구체적인 사회상을 밝히는데 도움이 되고자하였다.지리지를 통해 본 양구 지역의 성씨 분포 및 변화 과정은 우리나라의 전체적인 역사흐름과 맥락을 함께하였다. 18-20세기는 15-16세기에 비하여 다양한 성씨들의 출입이 있었음이 확인된다. 게다가 양구를 본관으로 하였던 柳氏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은 군소 성씨의 부침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양구 지역 세거씨족 역시 동족간의 결합이 강화되어 동족마을을 이루는 조선 후기의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 있다. 조선 말기를 기점으로 세거씨족의 양상을 살펴보면 13개의 주요 성씨가 세거하였음을 파악할 수 있다. 이들의입향은 성씨의 분기에 의한 것으로 그 요인은 재지사족과의 통혼, 관직으로 인한 인연...
TAG 동족집단, 지역연구, 서암사, 성씨, 세거씨족, 양구 유씨, Family Names, Residing Clans, Yanggu area, Yanggu Yu, Seoamsa
고종의 반청인식과 조선 주재 미국인들(1880-1894) -슈펠트,조선 주재 미국 공사관원,미국인 고문관을 중심으로-
장경호 ( Kyoung Ho Chang )  강원사학회, 강원사학 [2014] 제26권 67~97페이지(총31페이지)
이 글에서는 고종의 미국관 및 반청 인식의 형성과 그가 독립국으로의 지위를 확고하게 누리려고 하는 의도를 조선 주재 미국인들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즉, 이 시기 청나라의 간섭이 심화되는 가운데 고종의 반청인식이 어떤 식으로 형성이 되고, 그 인식의 형성에서 미국인들이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결과는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특히 미국인 슈펠트가 조선의 미국 인식 형성에 기여했다고 하는 점을 논증해 보고, 다음으로 조선 주재 미국 공사관원들을 살펴본 후 마지막으로 미국인 고문관의 역할에 대해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연구의 시기는 『조선책략』이 유입되고, 미국관이 형성되는 시기인 1880년부터 청·일전쟁으로 조선에서 청의 종주권이 약화되는 1894년까지를 주목했다. 이 시기는 조선의 미국 인식이 형성되고, 고종이 반청 인식을 가지고 독립국의...
TAG 고종, 미국, 조선, 반청, 미국인, King Kojong, America, Chosun, Anti-Qing, Americans, 미국인들
민영환의 "순국(殉國)" 담론에 대한 고찰
이성현 ( Sung Hyun Lee )  강원사학회, 강원사학 [2014] 제26권 99~146페이지(총48페이지)
민영환이 사망한 후 ``순국``으로 지칭되기에 이르기까지의 경과에 대해서는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민영환의 죽음이 이후 순국담론을 형성하고 혈죽론으로 재현되는 양상을 면밀히 살피고 한국사 전개에 끼친 의미와 영향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네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첫째 민영환이 어떤 인물이며 사후 그에 대한 평가는 어떠하였는가, 둘째 민영환의 자결과 그 영향이 순국담론 형성과 그에근거한 항일투쟁에 어떻게 나타나는가, 셋째 민영환이 죽은 자리에 피어난 혈죽의 의미와 상징성을 혈죽론을 중심으로 살핌으로써 민영환의 순국이 당시 사회에서 어떻게 재 가공되고 어떤 영향이 있었는가, 넷째 순국담론과 혈죽론의 상호연관성은 무엇인가 등을 검토하고자 한다. 민영환은 민씨 척족의 일원으로 니콜라이대관식이후 천일책을 통해 동도 서기...
TAG 민영환, 순국, 혈죽, 혈죽가, 자살투쟁, Min Young Hwan, Hyeoljuk, Hyeoljukga, sacrifice
누르하치의 호륜(扈倫)4부(部) 통합과 후금의 건국
김윤순 ( Yun Soon Kim )  강원사학회, 강원사학 [2014] 제26권 147~172페이지(총26페이지)
본고는 누르하치의 역량이 점차 강화되고 확대되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扈倫4部의 통합과정에 주목하였다. 누르하치는 1583년부터 건주부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건주여진 통합에 나섰다. 이후 장백산 3부와 瓦爾喀部 일부를 정복하였다. 건주여진의 누르하치는 호륜4부와 주변 국가 또는 부락 사이의 얽히고설킨 연합과 갈등의 과정을 수없이 거치면서 1598년부터 호륜4부에 대한 통합을 본격적으로 진행하였다. 이에 1599년 哈達을 시작으로 1607년 輝發, 1614년 烏拉, 1619년 葉赫을 차례로 통합하였다. 누르하치는 건주여진 통합과 더불어 호륜4부를 차례로 정복하며 이를 기반으로 1616년 후금을 건국하였다. 호륜4부는 명과의 중개무역을 통해 경제적 기반이 다른 부족에 비해 우수하였고, 部를 따르는 주변세력도 많았다. 또한 호륜4부는 누르하치의 건주여진과 명 사...
TAG 호륜, 扈倫, 4부, , 누르하치, 합달, 哈達, 휘발, 輝發, 오랍, 烏拉, 엽혁, 葉赫, Hulun Four Tribes, Nurhachi, Hada, Hoifa, Ula, Yehe
춘천 금산리 갈둔 구석기유적의 층위와 석기구성
최승엽 ( Seung Yup Choi )  강원사학회, 강원사학 [2011] 제25권 제24, 25집 합본호, 1~23페이지(총23페이지)
춘천 금산리 갈둔 유적은 북한강 본류에서는 처음으로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구석기유적으로, 495㎡(약150평) 정도의 소규모 발굴에서 약 2,000여점의 석기가 출토되어 밀집도가 매우 높다. 3유물층과 4유물층의 경우, 전체 석기중 몸돌과 격지, 돌조각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할 뿐만아니라 이들 중에는 되붙는 유물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여러 점의 망치돌도 더불어 출토되었다는 점은 이 유적의 성격이 석기 제작 행위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유적의 입지와 규모, 석기의 밀집도와 수량, 석기 구성의 다양성과 종류, 되붙는 석기의 존재, 층위의 안정성, 석기제작과정에서 생겨나는 산물 및 부산물 출현 빈도의 압도적 우위 등을 고려해 볼 때, 이 유적은 주근거지로서 꽤 오랫동안 머물면서 석기를 제작하고, 살림을 꾸려나갔던 장소...
TAG 금산리 갈둔, 층위, 돌감, 석기구성, 주먹도끼류, Handaxe, Pick, Gangwon-do, Geumsanri Galdun Site, Stratigraphy, Lithic assemblage composition
한민족의 형성시기에 대한 한 연구
박정학 ( Cheong Hark Park )  강원사학회, 강원사학 [2011] 제25권 제24, 25집 합본호, 25~58페이지(총34페이지)
한 민족의 역사를 기술하는 데 있어서 그 민족의 형성시기는 민족역사의 출발점이므로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그 중요성만큼 비중있게 연구되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아 역사 기술에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에 논자는 민족의 개념을 정의한 후 청동기시대와 대규모 무력충돌 시기를 기준으로 하여 민족형성시기를 판단하여 새로운 가설을 제기했다. 민족의 형성시기는 민족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데 서구의 주류학자들은 민족을 근대국가 성립 이후에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상상의 공동체라고 보고 있으나, 논자는 민족은 국가의 성립과 상관없이, 오히려 그보다 앞서서, 역사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국가 성립의 에너지로 작용하는 것으로 개념을 정립하였다. 청동기시대는 최근의 국내외 발굴성과와 치우천왕의 금속무기 제작 및 사...
TAG 민족의 개념, 민족 형성시기, 한민족 형성시기, 청동기시대 편년, 군사공동체, 상고시대 종족간 무력충돌, 민족형성시기 판단기준, concept of ethnos, concept of nation; the start of the bronze age, the armed conflicts of ancient, the time of ethnos formation, the time of formation of Han-ethnos, armed community,
기자조선에 대한 문헌적 분석
홍을표 ( Eul Pyo Hong )  강원사학회, 강원사학 [2011] 제25권 제24, 25집 합본호, 59~88페이지(총30페이지)
기자조선의 실존여부는 시대의 필요에 따라 상반된 주장과 인식이 있어왔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에도 달라지지 않고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진행중인 중국에서는 ``한민족(韓民族)은 기자조선과 고구려를 도용해 갔다``는 논리까지 전개시키고 있다. 그 주장대로 과연 우리가 기자조선을 도용해 갔는지, 그리고 기자조선은 실존했는지를 확인해 보기 위하여 먼저 중국 측 문헌에 있는 기자와 관련된 내용들을 다음과 같이 분석해 봤다. 첫째, 중국 25사(史) 중에서 기자조선과 가장 근접한 시기에 저술된 『사기(史記)』는 어느 곳에도 ``기자조선(箕子朝鮮)``이란 문구를 찾아 볼 수 없었다. 다만 <세가(世家)>38권,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제8에 "기자를 조정에서 봉하였으나 고결하여 신하가 되지 않았다(乃封箕子於朝鮮而不臣也)"라는 구절이 있다. 기자조선 설은 이것을 ``기...
TAG 기자, 箕子, 기자조선, 箕子朝鮮, 기자동래설, 箕子東來說, 주무왕, 周武王, 동이, 東夷, 『사기, 史記』, 『한서, 漢書』, 『위략, 魏略』, 『역경, 易經』, 『논어, 論語』, Dong yi, Gija, Gija Josun, 箕子朝鮮, "Han shu", "Shi ji, 史記", "The Analects of Confucious", "The Book of Changes", The view that Gija went east and became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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