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이해 청나라의 정치 문화 사법2

 1  중국의 이해 청나라의 정치 문화 사법2-1
 2  중국의 이해 청나라의 정치 문화 사법2-2
 3  중국의 이해 청나라의 정치 문화 사법2-3
 4  중국의 이해 청나라의 정치 문화 사법2-4
 5  중국의 이해 청나라의 정치 문화 사법2-5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중국의 이해 청나라의 정치 문화 사법2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강희제는 즉위 초기 반만(反滿) 사상을 억압하고 민심 수습을 위하여 명 왕조에 이어 주자학을 관학으 삼았고 스스로 여러 학문을 익혔다.
청 왕조는 내정을 안정시킨 후 반만적인 민족의식이나 정치관을 담은 책을 저술하였던 무리에게 탄압을 가하는데(문자의 옥) 이로 반만사상은 지하로 숨어들었다.

고증학(考證學)이 대표적인 학문이었는데 이것은 이민족 지배를 유지하기 위하여 취한 사상통제의 산물이었다. 처음 성조는 반만(反滿)사상을 억압하고 민심 수습을 위하여 명나라에 이어 주자학을 정통적인 관학으로 삼아 한민족문화에 친숙해졌다. 한편 명나라 말 이래의 학자 고염무·황종희·왕부지 등은 재야에서 반만주족적인 민족의식이나 정치이념이 깃든 서적들을 저술하였다.
청나라 정부는 이에 엄격한 태도로 임하였으며(文字의 獄, 禁書) 서적의 편집사업을 빙자하여 국가검정작업을 시행하였다. 이로 인하여 반만사상은 지하로 잠적하였고, 고염무에게서 시작된 고전의 실증적·비판적 연구는 고전이 지녔던 격렬한 경세(經世;정치적 실천사상)의 뜻을 잃으며 학술의 주가 되었다.
사학(史學)의 전대흔, 철학의 대진(戴震), 문자음운학의 단옥재(段玉裁) 등 학자가 배출되었고, 성조의 《강희자전(康熙字典)》, 성조·세종의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 고종의 《사고전서(四庫全書)》 등 대규모 문화사업이 이루어졌다.
고증학은 중국학술사상의 정점이었으며, 근대과학사상의 싹도 보호·육성되었으나, 곧 그 비실천성으로 인하여 선종 이후 중국사상의 위기 속에서 경세를 중시하는 공양학파(公羊學派;近文學)인 캉유웨이·량치차오 등이 변법자강의 실체운동을 불러일으켰다.
고문학파(古文學派)에서도 증국번·장즈둥 등의 송학(宋學) 부흥운동으로 이어졌다. 이들을 중심으로 하여 수행된 양무운동 사상은 사상으로 특징되며 그 뒤 옌푸[嚴復] 등에 의한 서양사상의 본격적인 소개와, 서양유학에 의한 신사상·신학문으로 청나라 문화는 실질적으로 막을 내렸다. 쑨원의 민족·민권·민생의 삼민주의(三民主義)가 그 결정체이다.

원(元)나라·명나라에 이어 희곡·소설이 크게 발달하였는데, 희곡에서는 《장생전전기(長生殿傳奇)》 《도화선전기(桃花扇傳奇)》가 2대 명작으로 손꼽히며, 중국 고전극의 집대성인 경극(京劇)으로 공연되었다. 소설은 《요재지이(聊齊志異)》 《부생육기(浮生六記)》 외에 《유림외사(儒林外史)》 《홍루몽(紅樓夢)》의 2대 장편이 저술되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옛 중국사회의 만주인 귀족이나 중국인 관료의 가정 및 인물을 구체적으로 그렸다.
또 청나라 말기에는 린수 등에 의해 서양 근대소설이 소개되는 한편, 《관장현형기(官場現形記)》 《노잔유기(老殘遊記)》 《이십년목도지괴현상(二十年目賭之怪現狀)》 등 관료의 부패상을 폭로하는 소설이 등장하였고, 《신보(申報)》 《소보(蘇報)》 《익문록(益聞錄)》 등 신문이 발행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