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후 친일파의 재등장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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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광복 후 친일파의 재등장 구조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식민잔재 및 친일파 청산의 좌절로 이끈 미점령정책은 광복된지 사흘부터 가동되기 시작한다. 조선주둔 일본군은 45년 8월 18일 일반명령 1호를 접수한다. 이 일반명령 1호는 아시아 각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현지 일본군과 일본통치기구는 공인되지않는(unauthorized) 현지 세력에 항복하지 말고 각자 맡은 임지에서 기존의 법과 질서를 준수시키도록 명령했다. 맥아더는 이에 덧붙여 조선주둔 일본군에 8월 28일자로 "나의 군대가 임무를 맡게될 때까지 조선의 38도선 이남의 행정기구를 그대로 보존하며 명령을 준수하도록 명한다." 이러한 미국의 일반명령 1호를 접수하자 총독부는,
"그들이(총독부가) 건준에게 이양했던 권한을 축소시키기 위해 총독부는 건준을 단순히 치안대로 격하시키면서 일본식의 간교한 대책을 강구했다. 한편 조선주둔 일본군사령부는 건준의 경찰력까지 빼앗아 무력화시키기 위하여 군인 3천명을 정규경찰로 바꿔서 경찰력을 대폭 증가시켰다. 그러나 건준의 여운형은 아무런 위협도 느끼지 않았다."
광복을 맞아 식민지 잔재청산과 친일파 척결의 대중투쟁이 확산되는 혁명적 상황으로 치닫고 있던 조선의 상황에 압도되어 공포에 젖었던 총독부와 일본인들은 드디어 안도를 하면서, 식민지의 범죄적 행위에 관한 기록들을 없애고, 공장기계를 파손시키고, 쌀을 일본으로 밀반출하며(45년 수확량의 20%가까이 밀반출되었음), 화폐를 무더기로 찍어내어 친일파에게 나눠주고(Gregory Henderson에 의하면 총통화가 전국적으로 4억이던 것이 8~10월 사이에 남조선에만 7억으로 증가하였다 함), 친일파와 민족반역자 및 모리배에게 자신들의 재산을 방매하기 시작했다.
45년 9월 8일 미군이 조선에 상륙하기 이전부터 일반명령 1호에 의거 일제의 식민지 기존 통치구조 및 사회구조와 친일파를 보호하는 조치가 취해졌고, 이 정책은 미군이 상륙하면서부터 더욱 본격화된다. 미국은 이미 1944년부터 조선에서 일본의 총독통치를 그대로 존속시키로 결정하였고, 이에 따라 미점령군은 조선상륙후 총독부 존속을 공포했다. 그러나 미국내의 여론이 비등하여 급기야 9월 12일 일본 총독 등을 사임시키고 일본 고위관리 대부분을 미군정의 고문으로 존속시켰다.
이에따라 광복공간의 대중적 혁명에 의한 기존의 식민통치구조의 와해를 저지시켜 식민지 잔재 구조는 지속될 수 있는 터전을 잡았고 광복초기의 구조바꿈은 무산되었다. 그것도 미국이 2차대전중 적군이었던 일본군대와의 긴밀한 제휴를 통하여 주로 전쟁중 동맹세력이었던 동맹군을(보기를 들면, 필리핀의 훅크, 베트남의 호지명 등 민족광복세력 등) 제압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어제의 적을 오늘의 동지로 끌어들여 어제의 동지를 섬멸시키려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양면성과 표변성이 적나라하게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정책은 조선 등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나 이태리를 비롯하여 아시아 전역에 걸쳐 일관되게 나타났다.
(2) 친미파로 돌변한 친일.반미파와의 통맹
반공.반소.반혁명을 정책기조로한 미점령군은 일반명령 1호에 의해 주로 어제의 적이었던 일본인을 동원해 조선인 대중투쟁으로 와해 직전인 식민지 통치구조를 긴급구출한 뒤 미군정을 실시한다. 이제 미군정은 대조선점령정책 기조를 실현시키기 위하여 본격적으로 친일조선인들과의 동맹을 결성하여 그들의 점령정책을 구현해 나가고, 결과적으로 일제의 식민지 잔재인 사회.정치구조를 재생시키고, 이 구조의 점유자를 민족반역자나 직.간접적 친일파로 체워넣어 친일파 청산을 좌절시켰다.
미군정은 크게 나누어 두개의 조선인 집단과 동맹관계를 이루어 나갔다. 하나는 조선인 구래의 지주계급과 지주.자본가계급이다. 이 집단은 직접적인 친일파와 간접적 친일파로 주로 구성되었다. 다른 하나는 식민지 관료집단이다. 이 집단은 거의 전부가 직접적인 친일파 집단이다. 이들 직.간접적인 친일파 집단과의 동맹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식민지 잔재의 철저한 청산과 친일파의 숙청을 제창하는 급진세력과 민중세력을 제압하여 남한을 반소.반공의 보루로 삼는 것이었다.
전자와의 동맹관계를 맺음으로써 광복된 조선사회를 기존의 일본제국주의가 지배하던 식민지 구조를 유지시켜 식민지질서를 강화.온존하려는 것이었다. 또 후자와의 동맹은 전자와의 동맹으로 설정된 사회적 목표, 곧 식민지구조의 온존.강화를 실현시키는 데 필요한 충실한 도구와 수단을 확보한 셈이다. 다시말하면 전자와 더불어 목표를 공유하고 후자와 더불어 수단을 공유하는 공생관계를 이룩하였다.
이들 미군정의 동맹세력인 구래의 지주계급, 지주.자본가계급, 식민지 관료들은 대개의 경우 민족반역자나 부일협력자, 또한 모리배였다. 이러한 동맹과 공생관계를 통해 친일파는 그들의 서식처를 되찾을 수 있었다.
이러한 동맹관계를 기반으로 친일파 지배계급을 소생시키고, 이들을 지원하기 위하여 식민지 관료와 동맹.밀월관계를 맺었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군과 경찰이었다. 미군정하의 경찰은 식민지의 국립중앙집권적 구조, 일제 식민지 경찰인력, 일제의 악랄한 법률과 범죄적 관행을 고스란히 이어 받았을 뿐 아니라 언제라도 필요한 경우 미군의 무장력이 군정경찰 무력을 지원하고 있었고, 규모 또한 엄청나게 팽창했다.